[窓]“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내 손발이 되어준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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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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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염경中난치병 앓는 최지영 양-급우들 ‘교실서 연 졸업파티’
걷지도 연필도 못잡던 날 위해
등하굣길 휠체어 밀어주고
필기까지 해준 나의 친구들
커서 우정의 드라마 만들거야

서울 염경中난치병 앓는 최지영 양-급우들 ‘교실서 연 졸업파티’졸업을 앞둔 최지영 양(앞줄 가운데)이 11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염경중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연 파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몸이 불편한 최 양을 위해 줄곧 필기를 대신한 김민주 양(앞줄 오른쪽)과 가방을 들어준 최지영 양(앞줄 왼쪽)도 함께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 제공 메이크어위시재단
서울 염경中난치병 앓는 최지영 양-급우들 ‘교실서 연 졸업파티’
졸업을 앞둔 최지영 양(앞줄 가운데)이 11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염경중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연 파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몸이 불편한 최 양을 위해 줄곧 필기를 대신한 김민주 양(앞줄 오른쪽)과 가방을 들어준 최지영 양(앞줄 왼쪽)도 함께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 제공 메이크어위시재단
“방송작가가 돼서…. 너희들한테…. 받은 사랑을…. 나눠…. 주고 싶어….”

힘겹고 어눌했지만 똑똑히 들렸다. 단어 하나를 내뱉으려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 했지만 친구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 멈출 수 없었다. 12일 오전 11시 서울 강서구 염창동 염경중학교 시청각실. 난치병인 척수공동증을 앓고 있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최지영 양(15)은 친구들에게 받았던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어 행복했다.

다섯 살 때 최 양은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와 다리를 다쳤다. 어머니 남인순 씨(45)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도록 했고 척수공동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척수에 뇌척수액과 비슷한 액체로 이뤄진 공간이 생기고 이것이 확장하면서 척수 신경을 손상시키는 무서운 병이었다. 수술이나 약물로도 완치가 불가능했다.

1급 장애를 짊어진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최 양은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은 공부였다. 책장 하나 넘기는 것조차 힘든 최 양에게 공부는 불가능해 보였다.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책을 소리 내어 읽을 수도 없었다. 연필을 잡는 것도 무리였다. 휠체어를 타고 집과 학교를 오가는 것도 버거웠다.

희망이 없을 것 같았던 최 양에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염경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다. 교내 시험에서 매번 평균 90점 이상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아진 것. 최 양의 성적을 끌어올린 ‘범인’들은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 최 양과 이름이 같았던 급우 최지영 양(15)은 등하굣길을 따라다니며 가방을 들어줬다. 최 양의 휠체어를 모는 ‘기사’ 역시 최 양이었다. 덕분에 최 양은 학교 구석구석을 마음껏 다닐 수 있었다.

최 양을 위해 자료를 챙겨주는 것도 친구들의 몫이었다. 필기는 주로 김민주 양(15)이 도맡았다. 김 양은 최 양이 미안해하면 “필기를 두 번 하면 나도 복습하는 거니까 걱정 마”라고 웃으며 말했다. 반 친구 전체가 최 양을 위해 ‘기사’가 되기도 하고 ‘학습지 배달원’이 됐다.

최 양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졸업을 앞두고 보답을 하고 싶었다. 마침 난치병 아동들을 위한 법인인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측에서 최 양의 사연을 듣고 이벤트를 마련해줬다. 12일 교실에서는 최 양이 준비한 파티가 열렸다. 마술쇼가 벌어졌고 케이크에 촛불도 켰다. 친구들 역시 최 양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편지를 쓰고 선물을 나눠가졌다.

파티가 끝나자 최 양이 다시 말했다. “친구들의 우정을 다룬 드라마를 꼭 만들 테니까 너희들이 꼭 봐줘!” 최 양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게 들렸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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