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엔 우리도 유엔 덕에 공부했는데…라오스 교과서 지원한다니 감회 새로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8일 03시 00분


당시 초등생이던 원로들 회상
1949년 종이 부족해지자
문교부 장관 美에 도움 요청
“젊은이들 역사 기억하길”

대한민국은 1951년 12월부터 1953년까지 해외에서 원조 받은 종이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라오스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지원하고 있다. 위 사진은 라오스 교과서 지원을 다룬 본보 6일자 A4면 기사. 아래는 1950년대 외국 지원으로 만든 교과서 표지(왼쪽)와 안내문. 사진 제공 교과서박물관
대한민국은 1951년 12월부터 1953년까지 해외에서 원조 받은 종이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라오스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지원하고 있다. 위 사진은 라오스 교과서 지원을 다룬 본보 6일자 A4면 기사. 아래는 1950년대 외국 지원으로 만든 교과서 표지(왼쪽)와 안내문. 사진 제공 교과서박물관
“라오스 어린이들도 그때 우리처럼 기쁘고 감격스러울 겁니다.”

유안진 시인(69)은 6일자 동아일보를 보면서 60년 전 회상에 잠겼다. 기사에선 라오스 학생들이 태극기가 선명히 인쇄된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도 배고팠던 시절 교과서로 배울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며 “젊은이들이 이런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2007년부터 라오스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 보급사업에 300만 달러(약 36억 원)를 지원했다. 60년 전 유엔 한국재건지원단(UNKRA)에서 받았던 도움을 다른 나라에 갚고 있는 것이다.

본보 보도가 나가던 날 서울 종로구 화동 서울교육사료관을 찾았다. 전시실 가운데 마지막 쪽이 펼쳐진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마지막 쪽에는 “이 책은 국제연합 한국재건위원단(운끄라)에서 기증한 종이로 박은 것이다. 우리는 이 고마운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층 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한국을 부흥 재건하는 훌륭한 일꾼이 되자”고 우리말과 영어로 씌어 있다.

60년 전 전쟁 통에도 천막 밑이나 노천에서 학교 문을 열었지만 교과서가 부족해 교사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기도 힘들었다. 전문주 교과서박물관 학예사는 “1949년 당시 교과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종이는 갱지 7600t, 모조지(백상지) 1500t이었다”며 “모조지는 전무했고 갱지도 4600t이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백낙준 박사가 미국으로 건너가 도움을 청했다. 황동진 서울교육사료관 학예연구사는 “백 박사는 미국에서 ‘한국이 공부를 못 하면 세계 아이들이 성공 못한다’는 내용으로 연설 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1951년 7월 유네스코에서 10만 달러를 지원했고 UNKRA 13만5000달러,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종이 1000t을 보냈다. 자유아시아위원회(INC)에서도 종이를 보냈다. 당시 문교부는 1955년까지 교과서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내용을 실었다.

이 무렵 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은 ‘UNKRA 교과서’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70)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쯤 학교에서 교과서를 나눠주는데 이전과 달리 교과서 종이의 질이 매우 좋았다”고 회상했다. 강정훈 전 조달청장(68)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당시 한국을 방문한 유엔 고위급 인사를 환영하러 기차역으로 나갔다. 강 전 청장은 “선생님께서 ‘유엔에서 교과서를 줬으니 고마워해야 한다. 유엔에서 나온 분이 문수역(경북 영주)을 지나가니 나가서 환영 해주자’고 말씀하신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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