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빙간음, 무죄…무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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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결정 뒤 처벌조항 없어
수사중 사건도 무혐의 처분
법원 “금품 편취는 사기죄”

헌법재판소가 11월 26일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 법원 항소심에서 이 죄로 기소당한 이들에게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이승호)는 4일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백모 씨(30)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헌재의 혼인빙자간음 위헌 결정으로 법률이 소급해 효력을 상실했고, 범죄가 성립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부남인 백 씨는 여성 정모 씨(29)와 혼인할 뜻이 없었는데도 2007년 5월 서울의 한 모텔에서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처음 든 여자다. 결혼을 허락해 주지 않으면 다른 여자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하며 정 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은 정 씨는 백 씨와 잠자리를 함께했다.

백 씨는 정 씨의 가족을 만나 결혼할 사이라고 인사를 하고 서울 강남구의 한 빌라에서 정 씨와 수개월간 동거를 하는 등 2008년 7월까지 1년 넘게 정 씨를 속였다. 사실을 알게 된 정 씨에게 고소당한 백 씨는 9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백 씨는 잘못을 뉘우치며 피해를 보상하기로 한 점이 참작돼 실형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선고 뒤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한편 부산지법 형사3부(부장판사 홍성주)는 4일 사기와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 씨(43)에 대한 항소심에서 혼인빙자간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김 씨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없다”며 “그러나 돈을 편취한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유부남인 김 씨는 이모 씨(36)에게 “아내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했다. 결혼하자”고 속인 뒤 2006년 12월∼2007년 1월 3차례에 걸쳐 호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재판부는 이날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모 씨(47)에 대한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박 씨는 평소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최모 씨(49)에게 “결혼하겠다”고 속인 뒤 2008년 1∼5월 5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진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 씨의 돈을 빼돌린 혐의(사기)에 대해서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80시간을 내렸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헌재가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직후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1심에 계류 중인 경우에는 공소 취소, 항소심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무죄를 구형하도록 일선 검찰청에 지침을 내려보냈다. 한경환 서울남부지법 공보판사는 “항소심 무죄 판결뿐 아니라 과거 유죄 판결에 대한 재심 청구도 이어지고 있다”며 “남부지법에도 2004년 혼인빙자간음과 사기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사건, 1990년 혼인빙자간음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사건에 대해 재심 청구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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