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 TOWN]“내 꿈은 좋아하는 공부 원없이 하는 것”

  • 입력 2009년 10월 12일 05시 36분


코멘트
과학고도 아닌 외고생이… 국제학술지에 과학 논문 실린 김규광 군
“내 꿈은 딱 하나,좋아하는 공부 원없이 하는 것”

《국내 고교생의 논문이 인용빈도가 높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 확장판(SCIE)에 등재된 국제 학술지에 실려 화제다. 주인공은 서울 대일외고 3학년 김규광 군(18). 과학고 학생이 쓴 논문이 국제 학술지에 실린 적은 있지만, 외고생의 논문이 실린 것은 이례적이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김 군은 두각을 나타낸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생물 I·II와 대학과정의 일반생물학을 독학했다. 최근 발표된 논문 외에도 이미 2편의 논문을 작성한 바 있다.

좋아하는 과학 공부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하는 김 군. 생물정보학자가 꿈인 그는 어떻게 과학자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을까.》


○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다

김 군은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일에는 푹 빠져드는 성향이 있었다. 글자를 보면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다. 동화부터 중단편소설, 과학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독서를 경험했다. 책이 주는 의미와 그 속에 담긴 지식, 사고방식을 알아가는 과정이 마냥 신기했다. 독서는 그에게 취미를 넘어 ‘생활’이었다.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과학책을 읽을 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죠.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주고,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과학은 흥미로웠어요.”

어느 순간부터 김 군의 손에는 늘 과학책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도통 ‘감(感)’을 못 잡았다. 그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경시대회를 준비한 적도 없고 학교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중학교 1학년 첫 시험에서 전교 45등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적이 떨어졌다.

점심을 먹고 나면 으레 학교도서관으로 향했다. 평소 과학도서를 통해 물질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면, 이때는 고전이나 철학책을 주로 읽으면서 생각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알게 됐다. 활자에 익숙해진 덕분일까. 영어로 된 책도 거부감 없이 읽었다. 읽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문맥 속에서 단어를 유추하고 문법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직접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무렵 유학을 생각했다. 그래서 외고 진학을 결정했다. 외고는 유학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많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이유였다.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 합격을 예상하기 힘든 상황. 그는 이때부터 오전 1시까지 영어듣기와 구술면접 준비에 노력을 기울였다. 영어듣기와 구술면접에서 거의 최고 점수를 받았다. 면접관들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하는 그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 불가능은 없다…연구하고, 논문 직접 찾아 읽고

외고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만년 1등은 없다’는 얘기가 오갈 정도로 치열한 경쟁에 숨이 막혔다. 이과반이 없는 외고에서 과학에 몰두하는 학생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암담한 현실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원 없이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 즈음 친구를 통해 생물학에 관심에 갖게 됐다. 김 군은 고교에서 2년간 배울 생물 I·II를 6주 만에 독파했다. 자율학습시간이나 주말은 김 군의 ‘과학 탐구’ 시간이었다.

새로운 과학지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지 궁금했다. 그해 여름·겨울방학에 서울대 의대 진단미생물학 연구실에 지원해 어깨너머로 실험방법을 배웠다. 김 군도 생물 II 수준에서 연구프로젝트를 계획해 진행했다.

틈틈이 연구실에 수북이 쌓여 있는 논문들을 탐독했다. 또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 등에서 ‘미생물학’ 관련 논문을 내려받아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 읽었다. 논문을 읽다 호기심이 생기면 저자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 묻기도 했다.

연구실에 지내면서 생물정보학을 처음 접했다. 생물정보학은 축적된 데이터를 컴퓨터로 가공해 다양한 생명현상을 밝혀내는 분야. 김 군은 2007년 겨울에 마이코박테리아 유전자 분석을 이용한 진단 결과를 논문 형식에 맞춰 써내려갔다. ‘청국장의 혈전 용해요소’에 관심을 갖던 차에 지금의 지도교수인 충남 호서대 김한복 교수를 만났다. 얼마 후 ‘제대로 된’ 김 군의 첫 논문이 완성됐다.

2008년 여름방학에는 서울대 자연과학대의 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생물정보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연구실로 달려가 오후 10시를 넘기기가 예사였다. 때론 실험결과가 계획대로 나오지 않아 실의에 빠졌지만, 좋아하는 일이기에 행복했다.

○ 논문 3편을 완성한 예비 과학자

김 군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종이에 적고 바로 구현해갔다. ‘미생물학’의 첫 장에 나와 관심이 있었던 탄저균 연구를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탄저균 진단 기술에 관한 김 군의 논문이 한국미생물학회지에 실렸다.

올해 8월에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염증 반응에 관한 단백질 네트워크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단백질 네트워크 분석 기법을 통해 위염을 일으키는 세균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되면 염증이 암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A4용지 11장짜리 논문은 ‘세계 소화기병학 저널(World Journal of Gastroenterology)’ 최신호에 실렸다.

이 논문은 1학년 겨울방학 때 만난 서울대 의대 대학원생과 의견을 나누던 중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난해 12월 한 논문에서 연구·분석기법을 차용해 본격 논문작업에 들어가면서 1년여 만에 결실을 맺은 셈. 논문의 저자를 찾아가 연구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 김한복 교수는 e메일과 전화로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김 군은 “수집한 데이터를 수식으로 표현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김 군은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늘 시간이 부족했다. 학교성적을 확인할 용기조차 나지 않아 정확히 반에서 몇 등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현재 김 군은 국내 대학 진학과 유학을 놓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박은정 기자 ejpark@donga.com

그래픽 박정은 ultramarine@donga.com

Prime TOWN’ 특집기사목록

▶ “내 꿈은 좋아하는 공부 원없이 하는 것”

▶ 개념,외우면 끝? 완벽히 이해해야 응용하죠!

▶ 하늘교육과 함께하는 문제 교실

▶ ‘학교시험 만점학습’ 한달 무료 방문교육

▶ 심층면접 준비 ‘3박자’를 맞추면 합격 앞으로

▶ 창의성 계발을 위한 토론수업<5>

▶ 중2, ‘마라톤 로드맵’을 짜라

▶ “영어 읽기 쓰기 불균형 바로잡아줍니다”

▶ 美입시 열정-꿈이 있는 ‘문제아’에 더 활짝

▶ ‘수능 출제 매뉴얼’을 반드시 읽어라

▶ 제2의 독 ‘지방’,죽이거나 혹은 살리거나

▶ “좁은 치대 입학문, 외국에서 열렸다”

▶ “엄마, 저한테도 예쁜 귀가 생기는 거죠?”

▶ 다크서클, 애교살 한방에 잡는 법

▶ 탈모인구 1000만 시대!

▶ 한국외국어대 TESOL 전문교육원

▶ “TESOL 자격증 따고 전문강사 됐어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