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살 집 줄게, 이사 가지마”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자연유산 지킴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 7번째로 ‘두꺼비 서식지’ 매입

《매년 봄이 오면 충북 청주시 구룡산 일대에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구룡산에 살던 두꺼비 수백 마리가 산란을 위해 200m가량 떨어진 원흥이 방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5월에는 반대로 새끼들이 구룡산으로 향한다.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 일대는 한국의 대표적인 두꺼비 서식지 중 하나다. 2002년 이곳에 큰 위기가 닥쳤었다. 주변 100만 m²의 땅에 택지개발이 시작되면서 두꺼비가 살 곳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다행히 두꺼비 대이동 사실이 알려지고 환경단체들이 나서면서 방죽 일대에는 두꺼비를 위한 생태공원이 조성됐다.》

최근에는 두꺼비들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지역 환경단체가 원흥이 방죽 주변 땅 1009m²를 사들여 두꺼비들에게 내놓은 것이다.

○ 두꺼비부터 한옥까지

두꺼비 서식지 구입에 필요한 비용 6000만 원 중 1200만 원은 시민 성금으로 충당했다. 계약금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4800만 원 마련을 위해 추가로 성금 모금이 이뤄질 예정이다. ‘두꺼비 보전기금’도 설립돼 두꺼비 서식지 관리에 사용된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양병이 대표는 “성금이 모자랄 경우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보유한 시민기금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두꺼비 서식지 매입 및 복원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겠다”고 밝혔다.

두꺼비 서식지는 2000년 1월 설립된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10년 동안 확보한 7번째 자산이다. 자연자산으로는 4번째. 가장 먼저 확보한 곳은 인천 강화군 길상면의 매화마름 군락지다. 매화마름은 20∼30년 전만 해도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거의 사라져 1998년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됐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길상면 일대 논에서 매화마름 군락지를 발견하고 시민모금과 기증을 통해 2002년 5월 3009m²의 땅을 구입했다. 2004년에는 동강이 흐르는 강원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의 일부 논과 건물을 매입했다. 제장마을 주변에는 어름치, 수달 등 각종 멸종위기 동식물이 살고 있다. 2007년에는 경기 연천군 비무장지대(DMZ)의 임야 4만 m²를 확보했다.

자연자산뿐 아니라 미술사학자였던 최순우 선생(1916∼1984)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과 한국 전통마을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남 나주시 도래마을 옛집, 조각가 권진규 선생(1922∼1973)의 서울 성북구 동선동 작업실 등 문화자산도 있다.

○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걸음마 단계

200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설립되면서 한국에도 본격적인 ‘땅 한 평 사기’ 운동이 시작됐다. 전국 곳곳에서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비슷한 운동이 펼쳐졌다. 그러나 실제 자산을 확보한 경우는 광주 무등산 등 3, 4곳에 불과할 정도.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은 부동산 가격의 영향이 크다. 시민들의 성금만으로는 웬만한 규모의 땅은 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모금 운동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매입 계획이 알려지면 자칫 땅 주인이 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단기간 매입 시도보다는 보전운동과 병행하면서 꾸준히 기금을 모으는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있다. 현재도 이 같은 전략에 따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맹산의 반딧불이 서식지 확보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금호 사무국장은 “한국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외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제도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모금을 바탕으로 보전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을 매입한 뒤 영구 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 ‘땅 한 평 사기’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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