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 사건뒤 달라진 구치소 미결 사형수들 분위기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9분


‘범털’ 행세하다 “사형 집행될까” 불안

예전엔 “어디한번 죽여봐라” 돌발행동도

지난해 법개정으로 분산 수감-면회 제한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불과 1년 사이에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39).

그는 2005년 6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지만 여전히 서울구치소 독거실에서 ‘미결수’로 생활하고 있다. 유영철은 평소 다른 재소자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외부인의 접견도 거부한 채 혼자 지내다가 종종 교도관들에게 ‘빨리 죽여 달라’, ‘어디 한 번 죽여 봐라’는 등 돌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차피 사형수” 구치소서 ‘범털’ 행세=법무부 관계자는 5일 “사형수는 일반 재소자 관리보다 훨씬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영철이나 정남규 같은 연쇄살인범들의 수형 생활에 대해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범죄자들이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법무부와 검찰 등에 따르면 사형수 관리는 교도관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일 가운데 하나다. 일부 사형수는 ‘어차피 죽을 몸’이라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생활 수칙을 어겨 구치소 분위기를 흐리거나 재소자들 사이에서 ‘범털’(배경이 든든한 재소자를 일컫는 은어) 행세를 하지만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이미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일반 재소자들은 수형생활을 하면서 복역 날짜가 줄어들면 출소의 희망이 있지만 사형수는 그렇지 않다”며 “11년 넘게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더는 잘못될 게 없다는 생각이 이들을 대담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형수 제재 강화…분위기 달라져=법무부는 장기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교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시행하고 있다.

사형수의 법적 신분은 형이 집행되지 않은 상태여서 ‘미결수’다. 따라서 다른 미결수들과 똑같이 매일 면회를 할 수 있고 노역장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이전에는 고등법원이 있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5개 대도시의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하지만 사형수를 기결수에 준해 처우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면서 법무부는 사형수들을 전국 곳곳의 교도소로 분산 수감했다. 이전에는 서울구치소에만 30여 명의 사형수가 수감돼 있었으나, 지난해 말 이후 15명 정도가 지방의 교도소로 이감됐다. 희망자는 노역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종종 돌발행동을 했던 일부 사형수의 수형 태도가 이후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연쇄살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들은 매우 불안해한다.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유영철의 변호를 맡기도 했던 차형근 변호사는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 씨 사건 이후 사형제가 논란이 되면서 사형수들이 상당히 불안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사형 집행 논란=실제로 강호순 씨 사건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사형 집행 여론이 다시 일고 있다. 법무부 홈페이지 등에는 최근 사형 집행과 사형제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5일 현재 사형수는 모두 58명. 하지만 법무부 고위관계자는 “아직 사형 집행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11년 동안 사형 집행이 중단된 만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형 집행 문제는 단순히 국내에서의 찬반 논란의 사안을 넘어서서 국외적인 변수까지 얽혀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의 입김이 강하고 사형제도가 없는 서유럽 국가들은 비공식적으로 “한국이 사형을 집행하면 교역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압력까지 넣고 있다고 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한국과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 문제도 “한국에 범죄인을 송환하면 사형을 당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 적도 있다고 검찰 관계자가 전했다.

한편 사형제도의 존폐 문제는 현재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라 있다. 광주고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사형제에 대한 공개변론이 6월 11일 열릴 예정이며, 올해 안에 사형제에 대한 위헌 여부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동아닷컴 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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