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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2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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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문앞에서 대기 ‘시위’도
의원들 “업무 마비될 지경” 불평
“A4용지 한장에 민원 정리해달라”
7일 서울 여의도 국회본청 6층 예산조정위원회 소회의실 앞.
일요일인데도 짙은 색 양복을 차려입은 30∼40명이 계수조정회의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오후 3시 반경에 의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은 의원들과 눈이라도 한 번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국회가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기 시작하자 국회본청 6층은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온 공무원들로 붐빈다. 이들은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어떻게 됐어?’라며 흘러나오는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내년도 예산이 본격적으로 심의되는 이때쯤이면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공무원들은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른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의 공무원들은 전전긍긍하는 표정이 뚜렷했다.
국회 본청 6층에서 만난 광주 예산담당관실 재원조정담당관 서모(48) 씨는 회의가 길어지면 복도나 휴게실 의자에서 새우잠을 잔다고 말했다.
“졸다 깨어 보니 노트북 컴퓨터가 없어진 적도 있어요. 밤늦게 끝나면 바로 숙소 잡기도 어렵고….”
지방에서 올라온 공무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 있는 호텔에 묵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해마다 ‘예산 시즌’이 되면 한꺼번에 국회로 몰려 국회 근처 호텔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투숙비용 또한 만만찮기 때문이다. 밤늦은 시간에 회의가 끝나면 대부분 서울 영등포시장 인근 모텔에서 보고서를 만들고 아침이면 국회로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전남의 한 기초단체에서 올라왔다는 박모 씨는 “오죽하면 없는 예산에 서울까지 와서 이러고 있겠느냐”며 “말이 공무원이지 영업사원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읍소 작전’에 의원들과 보좌진은 “업무 마비 상태”라고 말한다.
계수조정 소위에 포함된 A 의원은 “장차관은 물론 각 지자체장, 지자체 공무원 등 하루에 수십 명이 사무실로 찾아와 ‘5분만 만나 달라’고 부탁한다”며 “어떻게 알았는지 매일 친구 친척 동문 등 곳곳에서 ‘누가 갈 테니 얘기 좀 들어줘라’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말했다.
한 보좌관은 “한 지자체 직원은 일주일 동안 출근 때부터 퇴근 때까지 사무실 앞에 그냥 가만히 서 있다 나갈 때마다 인사를 했다”며 “‘걱정 말고 돌아가시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자리를 지켰다. 사실상 ‘무언(無言) 시위’를 하는데 지역구 사람이라서 뭐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B 의원실은 예산 관련 방문자에 한해 방문 사유를 적는 문서 양식을 비치해 놨다. ‘사업명’ ‘08년 예산’ ‘09년 예산’ ‘상임위 수정 예산’ ‘증감액’ ‘건의사항’ 등을 A4 용지 한 장에 간략하게 정리한 것으로 ‘민원’을 쉽게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서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