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빚 갚는 것 용서를”투자사 대표 ‘눈물로 쓴 유서’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2시 57분


손실 비관한 새빛에셋 최성국 대표 자살

모교에 12억 기부 등 평소 선행으로 눈길

“더는 갈 데가 없다. 죽음으로써 빚을 갚는 것을 용서해 달라.”

금융업계에서 인정받던 ‘금융부티크’(비제도권 유사투자자문사) 대표가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자산운용사인 새빛에셋 대표 최성국(56) 씨가 강남구 청담동 E호텔 10층 객실에서 숨져 있는 것을 19일 오후 4시 55분경 호텔 직원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16일부터 투숙했고 호텔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시신이 발견될 때까지 호텔 문을 나선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 씨가 스스로 목을 조른 흔적이 있지만 결정적 사인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보인다”며 “얼굴이 부어 있는 등 시신 상태로 봐 18일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최 씨는 발견 당시 객실 문 쪽에 기대 앉아 있는 상태였으며 목에는 압박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또 주변에는 가위로 잘린 그의 명함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최 씨 주변에선 빈 수면제 한 통과 양주병, 최 씨가 자필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30여 장이 발견됐다.

최 씨는 편지 형식으로 쓴 A4 용지 크기의 유서에서 최근 주가 폭락으로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친 데 대해 미안한 심경을 주로 기록했다.

유서에는 “저를 믿고 투자한 여러분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하게 돼 안타깝다…하늘에 가서도 계속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미국에서 시작된 경기 악화로 존경하는 분들 돈을 잃게 했다…원금이라도 갚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손해를 끼쳐 고개를 들 수 없다…남아 있는 여러분이라도 어려움을 잘 극복하길 하늘에서 빌겠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유서에는 매 장마다 미국에 있는 가족과 투자자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분량은 일정치 않았다.

또 최 씨의 복잡한 심경을 반영하듯 글씨 크기도 일정치 않았고 중간중간 눈물이 떨어져 번진 흔적도 있었다.

1981년 I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최 씨는 2000년 학교 동문 선후배를 주축으로 67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 벤처기업 전문투자회사인 새빛에셋을 세웠다. 2001년부터 선물, 옵션 투자를 취급하는 사설 투자자문회사로 바뀌었고 최 씨가 강연 등을 통해 주장한 바에 따르면 한때 연평균 300%에 이를 정도로 수익률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높은 수익을 올리면서 2000년 이후 모교에 기부한 금액만도 12억 원이 넘는 등 평소 선행으로 유명했다. 최 씨의 모교 직원은 “평소 모임에서 학교 얘기를 빼놓지 않을 정도로 학교와 동문들에게 애착이 많은 분이었다”며 “만나면 항상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는데 자살했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최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정말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금융계 분위기를 보면 이쪽 종사자들은 다들 최 씨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최 씨의 빈소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고 별도의 장례 절차 없이 화장을 치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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