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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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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재단-교직원 갈등으로 소송사태 벌어져
“공멸 안된다” 한발씩 양보해 임시이사 체제 마감
《“그동안 경인여대라고 하면 교육계는 물론 정계에서도 멀리할 정도로 분규 사학의 대명사 취급을 받았는데 재단과 교직원이 손을 잡게 돼 너무 기뻐요.” 29일 정이사 체제의 ‘새 출발 선포식’을 준비하고 있는 경인여대의 한 직원은 “재단과 교직원이 서로 헐뜯고 싸운 지난 8년의 세월이 안타깝지만 이제는 좋은 일만 남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2000년 학내 분규로 임시이사 체제가 된 경인여대는 지난해 3월 전국 21개 분규 사학 중 처음으로 정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올 7월에는 이사회가 설립자인 백창기(78) 씨를 이사장으로 재선임하면서 학내 분규도 마침표를 찍었다.》
분규 사학들 중에는 학교 구성원들이 정상화에 합의하지 못하거나 임시이사진의 ‘자리 보전’ 욕심 때문에 임시이사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경인여대는 화해와 양보를 통해 정상화를 이룬 첫 사례가 됐다.
1992년 경인여자전문대로 문을 연 경인여대는 1997년 정보통신부 지정 정보화 우수대, 1999년 교육인적자원부 지정 주문식 교육 우수대로 선정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0년 5월 일부 교직원이 “설립자 부부가 학교 공금을 횡령하고 교수들에게 횡포를 부린다”는 소문을 내면서 상황이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학생과 교직원들은 학장실에 난입해 집기를 들어냈고 설립자 측을 옹호하며 이를 막던 직원은 폭행을 당했다. 한 달 뒤 교육부가 종합감사를 벌였지만 공금 횡령은 확인되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당시 학교가 교수업적평가제 등을 도입하려 하자 신분 불안을 느낀 일부 교직원이 반발한 것이 단초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당시 교육부는 “이사회가 허위 회의록을 만들어 임원을 선임한 적이 있다”며 임시이사를 파견했다.
이후 교직원 7명은 설립자를 교비 횡령 혐의로 고소했고, 설립자는 해당 교직원들을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소해 교직원 4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외부 운동권이 가세해 사태가 더 나빠졌다는 평가도 많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2006년 5월 교직원 7명에게 징역 8개월∼2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확정했다. 설립자 측의 횡령 혐의는 무죄라는 취지로 서울고법에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 직후 교육부는 “임시이사 파견 사유가 해소됐으니 연말까지 정상화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학교 정상화에 구성원의 동의를 요구하는 사립학교법에 발목이 잡혔다. 설립자는 동의를 받지 못해 학교에 복귀하지 못했다. 반면 임시이사회는 유죄 판결을 받은 교직원에게 시간강사 자리를 줬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학내외의 비판이 커지자 학교는 정이사 선임을 위한 협의에 나섰다.
곽병선 학장의 조정 등으로 설립자와 교직원 양측 모두 정이사 선임에 양보의 뜻을 밝혔고 지난해 3월 정이사회가 출범했다.
정상화에 마지막 방점을 찍은 것은 당시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이었다. 올해 7월 임기를 2년 반이나 남기고 자진 용퇴하면서 설립자의 학교 복귀에 길을 터준 것.
8년 만에 복귀한 백 이사장도 분규를 일으킨 교직원 7명에게 특별채용 형식으로 손을 내밀어 상생을 통한 정상화 의지를 밝혔다.
학교 관계자는 “서로 앙금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과거에 연연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 예전 상태로 가면 공멸하고 학생들만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경인여대는 29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학교 관계자와 교육계 정계 인사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간의 갈등을 상생으로 극복하고 더욱 발전하겠다는 뜻을 다지는 새 출발 선포식을 갖는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