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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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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구리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어서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지도 몰라.”
지난해 가을 담임교사와 고교 진학 상담을 하던 유혁준(16·경기 구리시 구리고 1·사진) 군은 이 말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구리시는 비평준화지역으로 고교 입시가 치러지고 있다. 유 군은 중학교 내내 평균 60점대로 전교 500명 가운데 300등대였지만 고교 입학시험에는 당연히 붙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담임교사가 진학 가능한 고교로 말한 농촌지역의 ‘○○고’ 이야기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른바 ‘꼴찌 학교’가 자신의 이야기가 됐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유 군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내신과 연합고사 성적을 합한 고등학교 입학시험 성적은 전교 346등이었지만 고교 1학년 성적은 전교 6등이다. “고등학교에 떨어지면 학교를 안 보내겠다”던 부모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 Before: 지각대장 태권도 소년, 공부와 담을 쌓다
중학교 때 유 군의 꿈은 태권도 선수였다. 7세 때 시작한 태권도는 공인 4단. 공부에 관심이 없으니 성적은 늘 하위권이었다. 학원 종합반에 다녔던 유 군은 밤 12시에 집에 돌아오면 게임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잠들면 오전 3시까지, 말리면 오전 1시 반까지 컴퓨터에 불어있었다. 하루 8시간 동안 게임만 한 날도 있었다.
밤낮이 뒤바뀌어 학교에서 자고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한 달에 반 이상 학교에 지각하기도 했다. 수업이 시작된 뒤 유유히 교실에 들어갔던 유 군은 “당시엔 선생님께 혼나도 뭔가 ‘세 보인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머릿속에는 ‘잡생각’이 많았다. 유 군이 직접 그린 당시의 ‘뇌구조’(그래픽)를 보면 생각의 7할이 ‘게임’이다. 여자 친구도 있었다. 성적에 대해선 ‘하도 주변에서 닦달하니’ 조금 고민하는 정도였다. 고민이 공부로 이어지진 않았다. 교과서는 수업시간 외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시험 때는 일주일 전에야 학원 문제집을 들춰보는 수준이었다.
○ After: 346등이 6등이 되기까지
유 군은 공부에 있어 백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려니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하고 상담 받을 곳이 필요했다. 유 군은 학습 매니지먼트 업체인 에듀플렉스의 수택지점을 찾았다. 공부 계획성이 ‘제로(0)’에 가깝다는 진단이 나왔다.
유 군은 장단기 공부 계획을 세우는 법부터 익혔다. 먼저 6개월 공부계획표를 짰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인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 영역을 각각 어떤 교재로 몇월, 몇째 주까지 공부할 것인지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었다. 하루에 몇장, 몇 문제를 풀지도 정확히 쪼개서 정했다. 인터넷 강의 수강 일정은 따로 칸을 만들어 표기해뒀다. 일일계획표(그래픽)는 장기계획표에 따라 매일 아침 다시 썼다. 각 과목 교재와 인터넷 강의 중 그날 공부할 양을 쓰고, 우선순위를 정해 시간대별로 일정을 짰다.
공부 계획을 세우는 게 습관이 되니 그 많던 ‘잡생각’이 사라졌다. 유 군의 바뀐 ‘뇌구조(그래픽)’를 보면 게임 대신 공부(성적)가 생각의 7할을 차지하는 대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여자친구 생각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두 번째 변화는 책상에 오래 앉아있게 된 것. 예전에는 공부하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도 30분만 넘으면 ‘엉덩이에 쥐가 나는’ 느낌이었다. 유 군은 “계속 앉아 있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몸이 들썩거리는 등 신체변화가 나타났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공부계획서를 짜면서부터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한 과목의 공부가 끝날 때까지 앉아서 버티는 습관을 들였다. 상대적으로 약한 과목인 영어를 공부할 때는 최대 3 시간까지 앉아 있었다.
유 군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성적 급상승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때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공부했다. 다른 친구보다 기초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직하게 오래 앉아 공부량을 늘리는 전략을 썼다. 고교 입학 전 3 달 동안 ‘기본 개념 다지기→수능 유형 익히기→심화학습’의 세 단계로 나눠, 각 단계마다 과목별로 교과서를 읽고 목적에 맞는 문제집을 풀었다. 공부시간이 길었기에 실천 가능한 전략이었다.
고교에 진학한 유 군의 공부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평소에는 오전 2시까지, 시험 기간에는 오전 4시까지 공부한다. 이 때문에 “너는 머리가 나쁜데 체력이 좋아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한다.
유 군의 가장 큰 변화는 공부를 즐기게 된 것이다. 공부에 부쩍 재미를 느끼고 있는 요즘, 유 군의 꿈은 태권도 선수에서 물리학자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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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