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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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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기대와 희망에 들떠 있던 1998년 광주. 그 이면에는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명예만으로 지역과 후세들의 미래를 이어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동시에 고조되고 있었다.
그 무렵 이름도 생소한 광(光)산업이 광주에 등장했다. 지역을 먹여살릴 사업거리를 찾는 데 머리를 맞댔던 정부와 광주시 공무원, 민주당 소속 일부 국회의원 등은 외환위기 사태의 절정기였던 1998년 말 광산업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 광산업, 빛고을 밝히는 ‘효자산업’으로
‘지역 특화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작한 광산업은 당시 신발(부산) 기계(창원) 섬유(대구)에 비해 생소하고 성공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광산업이 첨단 전자산업의 한 분야인 것은 분명했지만 문제는 광주가 생산 소비 연구의 중심지로부터 거리나 정서상으로 소외된 데다 산업 및 연구개발(R&D)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
그러나 여러 가지 악조건을 극복하고 광산업은 10년 만에 광주의 ‘효자산업’으로 우뚝 서게 됐다. 올해 이 지역 광산업계의 예상 총매출은 1조21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1조 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당시 광주시 공무원들은 2000년을 앞두고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광산업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광산업 밀레니엄 축제’를 기획했다가 여론의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한 발 한 발 연구개발 인프라를 다지는 데 힘을 쏟았다. 당시 광산업 실무를 맡았던 한 공무원은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 추세를 볼 때, 관련 소재 업종인 광산업이 전성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세간의 의심 어린 시선을 물리쳤다”고 어려움을 되새겼다.
2000∼2003년 광산업 1단계 사업 때는 광 관련 연구 및 지원시설을 유치함으로써 ‘산학연’ 기능이 집적된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2000년 한국광산업진흥회를 시작으로 한국광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광주분원(광통신연구센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광주본부 등이 잇따라 설립돼 관련 연구 인프라를 키워 나갔다.
또 4020억 원을 들여 북구 월출동 광주첨단산단에 25만8700m²의 ‘광산업 집적화단지’를 조성했고 대기업 유치에도 발품을 팔았다.
현재 광주 광산업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LG이노텍은 잘 구축된 R&D 인프라를 활용하기 위해 2000년 청주공장을 이곳으로 옮겼다.
발광다이오드(LED)를 필두로 한 반도체광원 분야에서는 2015년까지 전체 조명수요의 30%를 LED로 교체하겠다는 정부의 ‘1530 프로젝트’ 등에 힘을 받아 급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 “대덕단지를 뛰어넘자”
광주시는 최근 10년에 걸친 광산업 육성의 성과를 돌아보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포토닉스 2010’ 계획을 정부와 국회 등에 내놓았다.
이 계획에 따르면 광주는 2010년 아시아 최고의 ‘광산업 집적지’로 성장해 광산업 생산액이 2조2000억 원에 이르는 등 연평균 27%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광산업 종사자도 1999년 1896명에서 2004년 3626명, 2010년에는 1만910명으로 연평균 21.3%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를 위해 3단계인 내년부터 2012년까지 △광정보네트워크 자동차 등 광시스템 △LED 및 신디스플레이 △광바이오 의료 및 레이저 정밀가공 분야의 기술 개발에 534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한 10여 개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산학연’ 협동클러스터를 구축한 광주만의 장점을 살려 대전 대덕단지와는 차별성을 둔 ‘광주 R&D특구’ 지정도 서두르고 있다. 시는 1만6000명에 이르는 고용 유발과 1조40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가져올 R&D특구 지정을 통해 서남권 과학기술벨트를 형성하고 국토 광역개발을 실현해야 한다고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고 있다.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광산업 간판주자 ㈜오이솔루션 창업 2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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