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집회 변질된 촛불집회

  • 입력 2008년 5월 27일 20시 01분


2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美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일대 도로에서 가두시위를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2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美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자들이 을지로 일대 도로에서 가두시위를 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나흘째 도로에서 시위를 벌였다.

2일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24일 이전까지만 해도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촛불집회는 더 이상 '평화의 상징'이 아니게 됐다.

24일 이후 시위대의 도로 점거가 계속되고, 온라인상에서도 폭력을 선동하는 게시물이 퍼져나갔다. 이 때문에 과거 되풀이됐던 폭력집회와 대규모 연행 사태가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무법 도심, '뿔난' 시민=밤이면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 등 서울 시내 교통 흐름을 '먹통'으로 만드는 시위대 때문에 촛불집회에 대한 주변 상인과 시민의 반응은 싸늘해지고 있다.

26일 종로2가 8차선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행진을 막는 경찰에게 "비폭력 시위대를 막는 이유가 뭐냐. 평화시위를 보장하라"며 4시간 넘게 맞섰다.

이를 지켜보던 회사원 이모(34) 씨는 "폭력을 쓰지 않았으니 평화시위라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명분이 불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로 거리는 '평화시위'라는 말이 무색했다. 27일에는 일부 시위대가 지하철 입구 지붕에 오르려고 쓰레기봉투 더미를 밟으면서 터져 나온 오물이 인도를 뒤덮었다. 일부는 또 거리를 막아선 시위대를 향해 경적을 울리는 버스 기사에게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액세서리를 파는 한 노점상은 평소보다 일찍 자리를 접으며 "15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온갖 집회를 봐왔지만 시끄러워야 먹힌다는 생각은 여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영상취재: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온라인에서도 '사이버 불법시위'=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인 '아고라' 등에는 선동적인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쇠고기 수입만 반대해서는 5년 내 지랄이다. 쥐박이 물러가라"식의 거친 말을 서슴지 않는다. "1001 기동단 투입되면 짱돌, 파이(쇠 파이프), 꽃병(화염병) 들어야 한다"며 폭력 을 부추기는 글도 있다.

일부 누리꾼은 허위 사실을 퍼뜨려 온라인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

시위대의 거리 점거가 벌어졌던 27일 오전 1시경에는 "5살짜리 어린애도 전경 곤봉을 맞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2명은 의식불명. 공산국가가 따로 없다"는 등 자극적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촬영상태가 좋지 않은 동영상이나 사진에 대한 억측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2시 반경 오마이뉴스와 인터넷 개인방송 사이트인 '아프리카'를 통해 촛불집회 생중계를 보던 일부 누리꾼은 앰뷸런스가 화면에 나온 뒤 중계가 5분간 끊기자 '경찰 등 정부기관에서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기 위해 전파를 차단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와이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KT 관계자는 "이날 오전 1시부터 7시까지 시스템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작업을 해 간헐적으로 서비스가 중단됐을 뿐"이라고 밝혔다.

▽보수·진보 대립 '불씨'도 다시=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문화제의 형식을 버리고 거리로 뛰어들면서 진보, 보수 단체들의 갈등도 다시 격화되고 있다.

촛불문화제를 주최하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는 27일 "연일 수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명박 정부에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으나 경찰은 시민을 폭력 연행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날 경찰의 출석 요구서를 받은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배후가 없으니 당장 눈에 띄는 촛불문화제 주최자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것인 만큼 부당한 출석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30여 개 보수단체로 이뤄진 국가쇄신국민연합은 학생운동단체 '다함께'가 왜곡된 사실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이날 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들은 "'다함께'가 26일 촛불집회에서 배포한 '거리의 반란이 시작되다'란 제목의 유인물에서 '이명박 정부의 머리통을 박살내야 한다' 등 자극적인 선동을 했다"고 밝혔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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