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아이는 어떻게 하라고…”

  • 입력 2008년 2월 20일 20시 09분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선효선(28) 대위의 남편 유영재(29) 대위는 20일 아내의 빈소 한쪽 벽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가끔 돌아서 "후"하고 깊은 한숨도 내셨다. 울음이 나와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강원 철원군 부대에서 비보를 들은 유 대위는 빈소가 차려진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선 대위를 "효선아"라고 부를 정도로 딸처럼 아꼈던 시어머니 이영자(53) 씨는 "근무지가 달라 한 달에 한 두 번 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가슴이 찢어져도 군인이라 울음을 참고 있다"며 오열했다. 선 대위의 딸 은채(3)는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 울지마"하고 이 씨에게 매달렸다.

2004년 결혼해 은채와 5개월 된 은결이를 둔 선 대위는 내년 2월 전역해 보건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시험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보건교사가 되면 더 이상 두 딸을 경기 성남시 분당의 부모님 집에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 씨는 "매일 점심과 저녁이면 안부전화를 하는데 어제는 오후 11시가 넘어 '제가 바빠서 늦었어요. 죄송해요'하고 연락이 왔다"며 "그게 마지막일 줄은…"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군장병 7명의 시신을 실은 군 앰뷸런스는 이날 오전 11시 50분경 국군수도병원에 도착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 듯 허공만 쳐다보며 기다리던 유족들은 그제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군의관 정재훈(33) 대위의 아내 이정미 씨는 남편의 이름을 하염없이 부르다 슬픔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산부인과 의사인 이 씨는 현재 임신 3개월이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정 대위의 어머니는 빈소를 찾은 아들 동료의 손을 부여잡고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아이는 어떻게 하라고…"라며 울부짖었다.

응급실 의무병 김범진(22) 상병의 어머니 윤용순(52) 씨는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뒤 그대로 주저앉아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봐서 눈도 못 감았다"며 "이틀 뒤 우리 아들 생일인데, 집이 가난해 제대로 받은 것도 없이 이대로 가버리면 어떡하느냐"고 목 놓아 울었다.

김 상병은 지난주 가족들이 면회를 가겠다고 했을 때 "이번 주말(23일)에 외박을 나갈테니 굳이 오실 필요가 없다"며 말렸다.

윤 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면회를 꼭 갔어야 하는 건데"라고 되뇌며 땅을 쳤다.

두 딸의 아버지인 조종사 신기용(44) 준위는 육군항공의 '표준교관 조종사'로 2005년 치악산에서 추락한 등산객을 구조한 공로로 군사령관 표창을 받았다. 다음달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막내딸은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눈이 새빨개지도록 울었다.

성남=홍수영기자 gaea@donga.com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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