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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8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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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박사’ 신정아(35·여) 씨의 의혹을 처음 폭로했던 장윤 스님(전 동국대 이사)이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과 만난 때를 전후해 당시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었던 한갑수 씨에게 신 씨의 감독 유임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중순 이사장에서 물러난 한 씨는 27일 “장윤 스님이 지난달 7, 8일경 나에게 전화를 걸어 ‘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맡는 데 박사학위가 없어도 되지 않느냐’며 신 씨를 두둔해 학위까지 속인 인격 파탄자를 감독으로 선임할 수 없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비엔날레 이사회는 지난달 4일 신 씨를 공동 예술총감독으로 내정한 뒤 같은 달 6일 장윤 스님 등에게 신 씨가 ‘가짜 박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12일 신 씨의 내정을 철회했다.
▽커지는 권력비호 의혹=신 씨 의혹을 공론화한 장윤 스님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사실이 확인되면서 신 씨를 둘러싼 권력비호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치권과 문화예술계에서는 현 정부와 각별한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신 씨의 뒷배란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증권가 정보지도 나돈다.
장윤 스님도 지난달 중순 본보 기자에게 “신 씨 임용 과정에 압력이 있었다”며 외압의 당사자로 고위 공직자 출신의 한 인사를 지목했다.
신 씨를 임용했던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의 측근은 27일 “당시 여러 대학에서 신 씨를 탐냈다”며 외압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신 씨가 재벌가와 친하다고 해 학교 건물 등을 기부받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한 전 이사장은 신 씨를 비엔날레 감독으로 선임한 배경에 대해 “처음에는 신 씨의 나이가 어려 아예 논의 대상도 되지 않았지만 다른 후보가 모두 고사해 어쩔 수 없이 신 씨를 내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누가 신 씨를 추천했는지, 가짜 박사라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문화관광부의 고위직은 누구인지 등 이번 파문의 주요 단서에는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또 신 씨가 지난해 3∼9월 문화부 산하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은행 추천위원으로 활동한 배경도 의문이다. 미술은행 추천위원은 신진 작가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사들이도록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청와대가 5주 전쯤 변 실장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권력비호설은 청와대로까지 번지고 있다.
변 실장이 과테말라에서 장윤 스님에게 전화를 했다면 통화기록 조회를 통해 쉽게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변 실장의 부인 외에 청와대는 별도의 해명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16일 미국으로 출국한 뒤 잠적한 신 씨의 출국 기간이 장기화되며 누군가 도피를 도와주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개인회생 신청을 한 신 씨에게 매월 수백만 원씩 생활비를 보태 주고 BMW 승용차를 사줬다고 밝힌 신 씨의 모친 이모(61) 씨가 현재 신 씨와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밝혀 이 같은 의혹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숨기고 말 바꾸고=24일 변 실장이 장윤 스님을 만난 사실이 보도된 뒤 두 사람은 나란히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있다.
핵심 당사자들이 연락을 끊거나 잠적한 가운데 오영교 동국대 총장과 한 전 이사장의 행보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오 총장은 24일 이사회에서 “종단의 누군가 나서서 ‘내가 부탁했다’며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26일 밤 본보 기자를 만나서는 “불심이 깊은 변 실장이 스님들이 지나가는 말로 ‘장윤 스님 때문에 시끄럽다’고 한 것을 듣고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전 이사장도 27일 장윤 스님이 변 실장과 만난 즈음에 신 씨를 옹호하는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에 대해 확인과 번복을 반복했다.
▽공은 검찰로=동국대는 지난달 업무방해 및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신 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권력비호설이 계속 불거지면서 검찰 수사도 신 씨의 배후를 조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청와대가 변 실장이 언론 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날 밝혀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신 씨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서부지검은 이날 신 씨의 임용에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진 동국대 오모 교수와 정모 교수를 최근 소환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신 씨가 교원으로 임용된 과정을 조사했지만 핵심 의혹과 관련해 의미 있는 진술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출석을 종용하고 있는 장윤 스님이 나오는 대로 참고인 조사를 벌인 뒤 신 씨 임용을 결정한 홍 전 총장 등을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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