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들의 대학생활]“돈독?… 주식투자도 사회경험이죠”

  • 입력 2007년 5월 26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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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선한 부자 동아리’ 회원들이 신문의 주식 시세표를 보며 투자 종목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3년 전 서울대 등에 생겨난 부자 동아리를 비롯해 최근 대학가에는 주식 투자, 창업, 경매 등 ‘돈’을 공부하고 재테크를 실천하는 모임이 인기다. 홍진환  기자
숙명여대 ‘선한 부자 동아리’ 회원들이 신문의 주식 시세표를 보며 투자 종목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3년 전 서울대 등에 생겨난 부자 동아리를 비롯해 최근 대학가에는 주식 투자, 창업, 경매 등 ‘돈’을 공부하고 재테크를 실천하는 모임이 인기다. 홍진환 기자
■ “재테크는 부전공”… 주식투자 - 창업 열풍

“올랐다. 올랐어.”

4월 초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이던 한양대 인문대 강의실에 나지막한 환호성이 터졌다.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영문학과 박모(24) 씨는 친구들에게 “내가 며칠 전에 샀다고 말한 종목이 드디어 올랐다”며 “오늘만 40만 원은 번 것 같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박 씨는 올해 복학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주식투자 책을 사보며 공부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300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강의 시간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모니터 화면 상단의 주식시황을 보며 직접 매매를 하는 광경은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대학 새내기인 건국대 김지영(19·여) 씨. 각종 포털 사이트의 재테크, 창업 카페 5군데에 가입을 했다. 주식과 적금 등 다양한 재테크 노하우와 창업 정보를 얻기 위한 것.

김 씨는 4월부터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힘들게 대학 가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돈 벌 궁리만 하느냐”는 엄마의 걱정도 개의치 않는다. 김 씨는 “지금부터 재테크를 하면 미래에 있을지 모를 취업난이나 돈이 필요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결혼도 내가 번 돈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학가에 재테크 열풍이 불어 닥쳤다. 취업난과 노후 문제가 사회 전반에 대두되면서 대학가에서는 주식 투자, 부동산 경매, 창업, 펀드 투자 등이 학번, 전공을 가리지 않고 유행이다. ‘돈’ 얘기를 하면 왠지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느끼던 대학문화는 사라졌다. 요즘 대학생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자본주의 법칙이 뼛속 깊이 내재돼 있다.

○ 주식투자는 비공식 부전공

한양대를 졸업한 97학번 김모(30) 씨는 주위에서 일등 신랑감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김 씨는 2005년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소형 평수의 아파트를 마련했다. 김 씨는 2000년부터 용돈을 모아 주식 투자를 시작했고 군복무 당시 받은 장교 월급을 합쳐 집을 마련했다. 그는 “남들보다 일찍 경제활동을 시작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며 “몇 년 앞서 출발한 것이 몇십 년이 지나면 수십 배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심명규(26) 씨는 작년 초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다. “용돈에서 한 달에 10만 원씩 내고 있어요. 재테크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습 삼아 하는 거죠. 우리 과에서 3명 중 1명은 펀드나 주식 투자를 해요”

주식 투자는 여유 있는 사회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종자돈 삼아 대박을 꿈꾸거나 사회에 나가기 전 연습 삼아 투자를 하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대학가의 최고 관심을 끄는 이벤트 중 하나가 주식 투자 대회다. 대신증권 오병화 과장은 “4, 5년 전부터 대학생을 대상으로 모의 투자 대회와 증권, 재테크 관련 강의를 열고 있다”며 “대회 참가 인원이 계속 늘고 있고 강의도 인기”라고 대학가의 재테크 열풍을 설명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0∼24세의 주식투자는 2003년 3만9528명에서 2006년 5만1887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 “그래, 나 돈독 올랐다”

올해 서강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올유저닷넷㈜을 운영하고 있는 정경태(27) 씨는 대학생 때 이미 네 번의 창업을 한 전문경영인이다.

정 씨는 대학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를 차렸다. 이후에도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보드게임카페, 게임방 컨설팅 등 여러 분야에서 창업을 시도했다.

정 씨는 “돈을 벌자는 마음보다는 사회에 나가기 전에 다양한 인맥과 경험을 쌓고 싶어서 창업을 했다”며 “독서만으로는 실제적인 경영 노하우를 습득하기 힘든 만큼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강대 경영학과 홍서연(22·여) 씨는 어엿한 인터넷 쇼핑몰 사장님이다.

홍 씨는 학교 선후배 2명과 함께 올해 특별한 날에 특별한 선물을 소개하고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을 창업했다.

세 명이 함께 몇 개월간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1000만 원으로 사무실을 임차하고 쇼핑몰을 구축했다. 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5월에는 어버이날 어린이날 등 기념일이 많아 12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홍 씨는 “주위에서는 공부도 안 하고 돈만 번다고 하지만 꿈이 사업가인데 대학생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국 대학 캠퍼스에는 418개의 창업 동아리가 있고 회원만 1만1500명에 이른다.

한국창업대학생연합회 김신나(덕성여대 04학번) 회장의 한마디. “학생들이 돈독이 올랐다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미리 경제에 대해 공부도 하고 사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창업 경험은 학교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 강의도 동아리도 인터넷 카페도 ‘부자 되기’

대학생들에게 ‘노후’는 먼 장래 문제가 아니라 피부에 맞닿아 있는 문제다. 숙명여대 ‘선한 부자’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신(경영학과 05학번) 씨는 최대한 일찍 재테크를 시작해 노후 준비를 할 생각이다.

“젊었을 때부터 경제적인 준비를 해야 노후도 든든하죠.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면한 문제예요.”

3년 전부터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시작된 부자 동아리는 각 학교로 퍼지면서 현재는 7개 학교 연합으로 100명이 넘는 학생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실전 주식 투자를 위한 경제 스터디를 하고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며 공부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경희대의 ‘성공학 개론’, 서울여대의 ‘부자학 강의’ 등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한 비결과 재테크 성공법을 알려주는 강의도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재테크 열풍은 거세다.

조한준(25·우송대 경영학과 2학년) 씨가 운영하는 다음 카페 ‘경제시대∼ 난, 솔직히 돈이 좋다’(cafe.daum.net/bjdj)에는 4000명이 넘는 회원이 활동 중이다.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 60만 원으로 조 씨는 지난해 3월 처음으로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 놓았다. 초기에 실패도 많았지만 용돈 벌이만큼은 되자 조 씨는 학업과 병행할 자신이 없어 아예 휴학하고 재테크에 나섰다.

“모든 재테크가 노후 준비를 위한 것인데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일찍 뛰어들었고 배우는 것도 생각보다 많아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만 20대를 위한 재테크 카페가 100개를 훌쩍 넘는 등 온라인은 대학생들의 재테크 정보 공유의 장이 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의 한 교수는 “386세대는 속마음이 어떻든 말로는 부의 축적 과정을 문제 삼고 부자들을 경멸했지만 젊은 세대는 ‘부(富)’ 그 자체를 선한 것으로 본다”며 “이들의 솔직함이 부럽기도 하고 지나친 배금주의가 싫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우린 펀펀 대학생”▼

심각하고 썰렁한 건 못참아 재미있는 것만을 추구한다

‘4월 13일, 영빈이가 사랑을 고백합니다.’

지난달 서울대 교내 곳곳에 내걸렸던 플래카드 글귀다. 반응은 뜨거웠다. ‘영빈이가 누구냐’는 질문이 학생 사이트인 ‘스누(SNU)라이프’ 게시판을 뒤덮었다. 포털 사이트의 지식검색창에도 질문이 쏟아졌다.

4월 13일은 서울대 50대 총학생회장 재선거가 시작되는 날. 서울대 총학선관위 측에서 재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내건 티저(Teaser) 광고였다.

선관위가 내세운 모토는 ‘재미있는 선거’. 정책 연설 대신 마임을, 대자보 대신 손수제작물(UCC)을 내세운 이번 서울대 총학생회 재선거는 51.3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과거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해 애태웠던 점을 감안하면 ‘흥행 대박’이었다.

젊은 팔공(1980년대생 대학생)은 재미없는 것은 못 참는다. 심각한 척, 심오한 척은 질색이다. 그래서 펀펀(fun fun)족이다. 어려서부터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에 중독된 이들에게 ‘썰렁함’은 곧 죄악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재미가 없으면 마우스를 건드려 한순간에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강의도, 사회생활도 재미를 따라 빠르게 이동한다. 삭발식, 단식 투쟁으로 대표되던 학생운동의 방식도 자연스럽게 ‘등록금 인상 패러디 공모전’, ‘댓글 이어달기’ 등 펀펀 세대다운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바뀐 것은 학생운동만이 아니다.

3월 19일 오전 연세대 대강당.

무대에서는 연극 ‘광해’ 공연이 한창이었다. 광해군의 삶을 다룬 이 연극의 배우들은 모두 연극 동아리 ‘연세극예술연구회’ 소속 학생들. 열정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에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시간은 동아리의 정기 공연도, 연극 관련 수업도 아닌 학교 예배인 ‘채플’ 시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채플은 사실 학생들에게는 지루함 그 자체였다.

연세대는 올해 1학기 채플 수업의 3분의 1을 음악, 무용, 대화 등의 ‘실험 채플’로 바꾸었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도 모두 재학생이다. 한인철 교목실장은 “학생들의 취향에 맞춰 과감하게 실험 채플을 도입했다”며 “실험 채플 도입 이후 학생들의 참여도와 관심도가 매우 높아졌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강의실도 ‘펀펀 바람’을 피해 갈 수 없다. 이제 파워포인트, 동영상의 활용은 강의의 기본 조건이다. 한양대 교수학습센터의 유영만 교수는 “학생들은 강의 내용이 아무리 유익해도 재미가 없으면 휴대전화 통화를 하거나 아예 나가 버린다”며 “교수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재미있게 가르칠 것인가’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수학습센터가 실시하는 ‘교수법 워크숍’은 참석을 희망하는 교수가 너무 많아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인스턴트 대중매체 안에서 자라 온 지금 대학생들에게 ‘재미’는 특별한 가치가 아니라 일상생활”이라며 “과거 대학가를 지배했던 엄숙한 체하는 위선의 문화는 극복했지만 너무 즉자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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