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여는 핵심들… ‘의혹의 바다’ 열리나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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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나는 ‘바다이야기’  21일 울산 남구 삼산동 옛 울산경찰서 터에서 경찰이 압수해 보관 중이던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오락기를 굴착기로 파쇄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조각나는 ‘바다이야기’ 21일 울산 남구 삼산동 옛 울산경찰서 터에서 경찰이 압수해 보관 중이던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오락기를 굴착기로 파쇄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최근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김민석(41·구속기소) 회장에게서 “2004년 7월경 사행성 게임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인 안다미로 김용환 대표에게서 3억5000만 원을 받은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문화관광부 측에 상품권 제도 도입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 대표와 김 회장 간의 돈거래 내용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김 회장이 조금씩 입을 열면서 한 진술이다.

김 회장은 이 돈에 대해 “사업상 필요해 빌린 돈으로, 차용증도 써줬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이 돈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검찰은 이 돈이 경품용 상품권 인증제 도입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두 사람이 돈을 주고받은 시점이 2004년 7월이라는 대목이다. 이때 문화부는 경품용 상품권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5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 문화부는 이때의 방침과는 달리 상품권 발행업체 인증제를 도입했다.》

▽“로비의혹 규명의 문턱에 와있다”=출범 1개월을 맞는 특별수사팀은 최근 조금씩 활기를 찾는 모습이다. 김 회장은 물론 이번 사건의 핵심 인사들이 조금씩 말문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금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밝혀낼 문턱쯤에 와 있다고 말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얘기다.

한 상품권 발행업체 측에서는 “검찰에 불려 가면 구속을 피하기 위해 여당 의원 2명, 야당 의원 1명에게 로비한 것을 털어놓기로 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상품권 발행업체의 회사 돈 횡령이나 세금 탈루 등 뚜렷하게 확인이 가능한 부분부터 파고든 압박작전이 주효하고 있는 셈. 특히 일부 상품권 업체 조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자금 횡령 부분은 로비 자금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검찰은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부 모 국장과 관련된 차명계좌에 수천만 원의 자금이 흘러간 것을 찾아낸 것도 씨큐텍 대표 유모 씨가 횡령한 30억여 원의 자금을 추적한 결과였다.

‘바다이야기’ 제조 및 판매업체의 주주들이 차명계좌로 관리해 오던 현금 254억 원과 수표 63억 원 등을 찾아낸 것도 계좌 추적에 따른 것이다.

▽뇌관 터지면 수사 급물살=이번 수사의 성패는 권력 실세와 주변 인사들이 사행성 게임 사업에 관여했는지를 밝혀내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검찰도 인정하고 있다.

현재 검찰의 직접적인 수사 선상에 오른 정관계 인사는 씨큐텍 대표 유 씨에게서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소환됐던 문화부 모 국장 등 몇 명 정도다.

앞으로의 수사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 씨, 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권기재 씨가 ‘숨은 뇌관’으로 꼽힌다. 검찰은 일단 노 씨와 권 씨 주변에 대한 수사를 뒤로 미뤄놓고 있다. 좀 더 뚜렷한 증거들을 찾기 위해서다. 만에 하나 이들이 연루된 구체적 사실이 드러날 때는 수사는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다.

로비 의혹과 관련된 첩보는 여러 경로를 통해 광범위하게 수집돼 있다. 이들 첩보에는 ‘게임업장의 헌 수표로 정치인에게 거액을 건넸다’ ‘유력 정치인이 모 상품권 발행업체의 지분을 인척의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는 등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검찰은 이 중 일부는 결국 사실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숨 가빴던 한 달=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검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사행성 성인용게임과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선정을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한 달 동안 검찰은 게임기 제조업체와 게임업소,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영상물등급위원회, 문화부 등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벌여 왔다.

수사 범위가 광범위한 만큼 이번 사건에는 부장 2명을 포함해 검사 18명이 투입됐다. 직원들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는 수사 인력이 동원되고 있다. 단일 사건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검사 15명 등 62명의 수사 인력이 투입된 지난해 국가정보원 및 국가안전기획부 불법 감청 사건 수사나 검사 13명이 수사를 맡았던 1995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수사보다 많은 인력이 동원된 것이다.

또 지금까지 상품권 발행업체 19개를 포함해 97곳을 압수수색하고, 135명을 출국금지해 다양한 분야에서 과거 검찰 수사의 기록을 경신 중이다.

그러나 대대적인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로비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 뒤에야 수사가 본격화돼 수사 대상자들은 이미 사무실은 물론 집까지 깨끗이 치워 놓았기 때문. 지난달 23일 검찰이 영상물등급위원회 압수수색을 나갔을 때는 직원들이 컴퓨터의 하드드라이브를 꺼내 새것으로 교체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상품권 발행업체 19곳 중 압수수색에서 소득이 있었던 곳은 2곳 정도에 불과하다”며 “현장에 가 보니 직원들이 미리 물품을 박스로 싸둔 곳이 있었을 정도로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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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전국 오락실 집중단속 여파

‘바다이야기’ 파문 이후 경찰은 사행성 성인오락실과 성인 PC방을 집중 단속해 1만7800곳을 적발하고 관련자 5만3000여 명을 입건했다.

단속 과정에서 불법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경찰관이 업주에게서 돈을 받은 사실도 드러나 경찰이 대대적인 감찰에 나섰고 일부 현장 단속 경찰은 물갈이됐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사행성 성인오락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으로 업주 106명이 구속되고 7453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또 ‘바다이야기’ ‘황금성’ ‘야마토’ 등 불법 사행성 게임기 3만157대가 압수됐다. 1t 트럭 6031대 분량이다.

성인 PC방 업주도 1571명이 구속되고 3만8397명이 불구속 입건됐으며 PC 18만5772대가 압수됐다.

불법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경찰도 잇따라 적발됐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장 박모(48) 경정은 성인 PC방 업자에게서 “불법 영업 사실을 눈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500만 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20일 검찰에 구속됐다.

이에 앞서 7일에는 경찰종합학교 간부 조모(51) 총경이 오락실 업주에게서 1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 오락실 업주들과의 유착 비리가 드러난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전체 직원 14명 중 13명이 다른 경찰서로 전출됐다.

단속 경찰들의 비리가 곳곳에서 드러나자 경찰청은 19일부터 오락실 업주와의 유착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에 나섰다. 불법 영업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하루 5만, 6만 원씩의 개인 돈을 써 가며 사행성 성인 오락을 직접 해볼 수밖에 없었던 단속 경찰관들이 수사비 부족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자 26억3000만 원의 예비비가 긴급 편성되기도 했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중고 PC와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 값은 폭락했다. 경찰이 성인 PC방까지 대대적으로 단속하자 성인 PC방 업주들이 영업을 포기하고 중고 PC와 LCD 모니터를 중고 컴퓨터 시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

중고 PC 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6월까지 25만 원 선이던 20인치 중고 LCD 모니터가 물량이 늘어 지금은 10만∼15만 원대로 떨어졌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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