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노조 “올해도 싸우지 않고 이겼다”

  • 입력 2006년 1월 3일 03시 03분


코멘트
국내 프로야구에는 ‘백지 위임’이라는 게 있다. 연봉협상에서 선수가 구단에 “알아서 달라”고 하는 것이다.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이는 서로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계약방식이다.

LS그룹 계열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업체인 E1이 11년 연속 임금협약을 무교섭 타결해 눈길을 끌고 있다.

E1 노동조합은 2일 열린 시무식에서 올해 임금에 관한 모든 사항을 회사에 맡긴다는 위임장을 구자용 사장에게 전달했다. 이로써 E1은 1996년부터 올해까지 11년 연속으로 임금협약을 무교섭 타결했다.

‘임금협약 무교섭 타결’은 프로야구의 백지위임이나 마찬가지. 뜻을 이루기 위해 파업도 마다하지 않는 판에 무교섭 타결은 좀처럼 드문 일이다.

이승현 노조위원장은 “사실 하루아침에 이런 관계가 이뤄진 건 아니다. 그동안 부단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신뢰가 두터워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6년째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다.

“임협을 회사에 맡겨도 안심이 된다. 회사에서는 그동안 석유화학업계에서 최고수준의 대우로 우리에게 보답을 해줬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0일 대의원회의에서도 전원 찬성으로 올해 임금협상 무교섭 타결을 결의했다.”

E1은 SK가스와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LPG 수입공급업체로 1984년 설립 이후 22년 연속 흑자를 냈다. 2004년 실적은 매출액 1조7415억 원에 당기순이익 460억 원.

2004년 평균연봉 6560만 원으로 전체 상장사 가운데 삼성전자 SK가스 에쓰오일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최근 10년간 평균임금인상률은 4∼7% 수준이었다.

직원 218명에 노조조합원은 60명. 여수와 인천기지에만 노조가 있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는 노조가 없다.

이 회사는 워크숍과 분기별 경영현황설명회 등을 통해 노사가 꾸준히 경영정보를 공유하고 긴밀한 대화를 지속해 왔다.

이 위원장은 “적어도 노사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노조보다 두 발짝 정도 앞서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대기업 가운데 첫 번째 임금협약 타결을 기분 좋게 장식한 E1의 소식이 올해 전반적인 노사관계 호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