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복거일]‘인간의 노후화’ 슬퍼만 할 일일까

  • 입력 2005년 10월 17일 03시 10분


8일 미국 모하비 사막에서 열린 ‘대도전(Grand Challenge)’ 경주에서 5대의 로봇 자동차가 200km가 넘는 험한 땅을 달리는 데 성공했다. 이 작은 뉴스는 언뜻 보기보다 깊은 뜻을 품었다. 작년의 첫 대회에선 완주한 자동차가 없었으므로, 이번 대회는 ‘무인(無人) 체계’의 빠른 발전을 유창하게 증언해 준다.

이미 많은 분야에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는 기계 체계들이 있다. 그리고 컴퓨터와 무선통신이 빠르게 발전하므로, 복잡한 체계들의 환로(loop)에선 점점 사람이 취약한 고리로 되어 간다. 이런 사정은 올해 8월 키프로스 여객기가 추락한 원인이 조종사들의 과실이라는 사실에서 다시 드러났다. 조종사들은 비행 전 점검과 상승 과정에서 거듭 울린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내의 기압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그런 경고를 잘못 해석하고 무시해 버렸다. 그래서 고도가 올라가자, 그들은 산소 부족으로 판단력이 흐려져서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여기다 독일인 조종사와 키프로스인 부조종사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 사고는 예외적이 아니다. 항공 사고는 많은 경우 기계 결함이나 불가항력이 아니라 운항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실수나 판단 착오에서 나온다. 이내 눈에 뜨이는 대책은 항공 운항에서 취약한 부분인 사람의 고리를 아예 없애서 무인 체계로 만드는 것이다. 만일 항공기들이 기내와 관제탑의 컴퓨터에 의해 운항된다면, 항공 여행은 훨씬 싸고 안전해질 것이다. 그런 체계에 필요한 요소 기술은 이미 존재한다.

핵심 장애는 물론 항공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기득권이다. 조종사와 관제사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조종사 없는 여객기를 띄울 수 있는 항공사는 아직 없다.

이런 사정은 군용기에서 더욱 뚜렷하다. 크루즈 미사일과 소형 무인항공기(UAV)들은 조종사들이 탄 전투기를 낡은 기계로 만들었다. 조종사들이 타지 않으면, 전투기는 훨씬 싸게 만들어져 더 많은 연료와 무기를 싣고 더 멀리 날고 더 민첩하게 기동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명의 손실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 공군이 스스로 실업자가 되려 하겠는가? 그래서 시대에 뒤진 전투기들이 엄청난 비용으로 개발되고 제작된다.

전쟁이라는 극한 경쟁에 나서야 하므로, 그래도 군대는 합리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기계화의 논리는 군대에서 활발하게 작용한다. 이라크전쟁의 사상자가 많아지면서, 미국은 이미 전투 로봇과 무인지상차량(UGV) 개발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경계와 물자운반 임무를 맡을 ‘견마형(犬馬形) 로봇’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런 기계화 과정은 모든 부면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사람의 육신은 점점 노후화된다. 실은 사람의 육신만이 아니라 지성까지도 노후화된다. 모든 지적 작업은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지고 컴퓨터의 몫은 점점 늘어난다.

인간 지성의 노후화는 인공지능(AI)에 바탕을 둔 소프트웨어의 발전에서 잘 드러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는 증권거래다. ‘로봇 거래인(Robo-trader)’은 육신을 가진 거래인보다 상당한 우위를 지녔다. 아직까지는 거래할 종목을 고르는 데 사람이 개입하지만, 머지않아 로봇 거래인이 뉴스를 분석해서 거래할 종목을 결정하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인공지능에 바탕을 둔 소프트웨어는 어려운 가치 판단이 요구되는 분야에도 침투했다. 예컨대 법률 소프트웨어는 시민에게 아주 싸고 놀랄 만큼 정확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 왔을 뿐 아니라 요즈음엔 재판관이 더 많은 자료를 참고해서 더욱 일관된 형량을 결정하도록 돕는다.

앞으로 인간의 노후화는 점점 가속될 것이다. 그런 과정의 궁극적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지금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인류 문명에 근본적 수준에서 작용해서 인류의 모습을 다듬어 내고 있다.

인간의 노후화는 우리에게 서글프고 두렵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차원에서 살피면, 그것은 인류의 성취를 뜻한다. 지구의 생명은 인류라는 종(種)을 통해서 혁명적 진보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런 진보를 이어 갈 것이다. 필요하다면, 다른 종들을 통해서.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궁극적 가치는 지구 생명의 차원에 있지 특정 종의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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