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감염 혈액 유통은 인재(人災)

  • 입력 2005년 9월 6일 12시 10분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을 수혈용과 의약품 원료로 사용한 사건의 발단은 대한적십자사의 혈액검사 잘못 때문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동아닷컴의 보도가 나가자 “기존 혈액검사의 방법인 효소면역검사(EIA)로는 에이즈 잠복과정에서의 바이러스를 가려낼 수 없어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2005년 2월 핵산증폭검사(NAT) 기기가 도입되면서 검사를 다시 해 보니 양성임이 확인됐다”고 해명했다.

즉 검사법의 기술적 후진성 때문에 에이즈 음성으로 판명된 혈액이 새로운 검사기기의 도입으로 양성임이 밝혀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문제의 혈액을 기존의 효소면역검사법으로 재검사한 결과 양성으로 판명됐기 때문.

결국 당시 에이즈 검사의 결과가 잘못되었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 교통사고 환자 허모(여·26) 씨에게 수혈용으로 공급된 대학생 김모(23) 씨 혈액의 경우 헌혈 당시인 2004년 12월 효소면역 검사 결과 음성이었으나 올 4월 효소면역 검사에서는 양성으로 판명됐다.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검사인 셈.

하지만 올 4월 검사는 핵산증폭검사(NAT)에서도 재차 확인했으므로 잘못됐을 리가 없다. 결국 2004년 12월 검사에서 문제가 생긴 것. 김씨의 혈액은 제약사로 공급돼 3789병의 알부민 제조에 사용됐다.

다시 말해 이번 에이즈 감염 혈액 유출사태가 에이즈 검사기기의 도입과 상관없이 적십자사의 인재에 의해 일어난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파악한 복지부측은 “당시의 검사과정에 이상이 있었는지 여부는 전문적인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며 “우리부가 혈액 전문가들과 합동으로 조사해 그 결과를 즉각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에이즈 감염 혈액 유출 사태에 대해 시민단체의 항의와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혈액으로 만든 혈우병 치료제를 지속적으로 투약해야 하는 혈우병 환자들의 모임인 환우회는 “투약기록을 일일이 확인해 이번에 문제가 된 약을 맞았을 경우 복지부에 에이즈에 대한 검사와 역학조사를 의뢰할 것”이라며 “불활성화 처리가 돼서 괜찮다는 얘기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분개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도 5일 성명서를 통해 “이미 불량 혈액을 유통시킨 문제로 총재가 바뀌고 5명의 고위 책임자 해임과 27명의 혈액원장 및 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마당에 이런 일이 다시 터졌다”며 “적십자사가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 더 이상 혈액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영철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