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소송꾼’ 설친다…소액소송 불법대행

  • 입력 2005년 6월 30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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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도 ‘짝퉁’이 만연하고 있다.

전문 소송꾼들이 가짜 신분증으로 채권자(원고) 행세를 하면서 소송에 참여해 승소 판결을 받아 낸 뒤 채무자(피고)를 압박해 목돈을 뜯어내고 있다.

금융기관과 할부 판매업체들이 대출금이나 할부금을 갚지 않는 소비자들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하는 대신 이들 전문 소송꾼에게 대출금 채권(債權)을 헐값에 넘겨 불법 소송을 부추기고 있는 것.

▽‘짝퉁’ 소송대리 첫 적발=민사 소액 사건(청구금액 2000만 원 이하인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K 판사는 지난달 26일 원고인 J상호저축은행(옛 신용금고)의 소송 서류가 부족한 사실을 발견했다.

K 판사는 소장에 나타나 있는 J은행 소송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서류를 보충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담당자는 은행 직원이 아니라 남의 빚을 전문적으로 받아주는 채권추심업체인 W사 직원이었다.

민사소송법상 소송 대리는 원칙적으로 변호사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소법은 예외 규정을 둬 2000만 원 이하의 신용대출금과 할부금 사건 등 일부 소액 사건은 회사 직원이 회사를 대리해 변호사처럼 소송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K 판사가 확인한 결과 W사는 J은행에서 채권을 헐값에 양도받은 뒤 실제 채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해 돈을 받아 왔다. K 판사는 “대출 금융기관들은 어차피 떼이는 돈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실제 채권 금액의 10% 정도만 받고 채권추심업체에 넘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채권추심업체는 원금이 1000만 원인 채권(債權)을 100만 원 이하의 헐값에 양도받은 뒤 해당 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해 원금 1000만 원에다 연체이자까지 합쳐 목돈을 받아 낸다는 것.

이 과정에서 W사 직원들은 J은행의 위임장과 재직증명서를 위조해 법원에 제출한 뒤 J은행 직원으로 행세하면서 소송 업무를 해 왔던 것.

K 판사는 “W사 직원들은 지난해 3월 이후 수천 건의 불법 소송 대리를 해 왔다”며 “이 같은 불법 소송 대리는 법원 전산망으로 검색이 안 될 만큼 빈번하다”고 말했다.

같은 법원의 P 판사는 “서로 다른 별개 회사의 소송을 같은 사람이 대신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불법 소송대리의 피해는 고스란히 채무자에게 넘겨진다. 전문 소송꾼들은 소송 과정에서 채무자들을 압박하고, 또 승소 판결을 받으면 그 판결을 근거로 가혹하게 돈을 받아낸다고 판사들은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채무자들이 법정에서 눈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채권추심업체 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돈을 갚으라는 전화를 하고 가족들에게 욕설까지 한다는 것.

▽법원도 속수무책=변호사법은 돈을 받고 불법적으로 소송을 대리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K 판사는 “검찰이 알아서 수사를 하면 좋지만 법원이 먼저 수사 의뢰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불법을 방조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불법 시비를 피하기 위해 전문 소송꾼들이 아예 회사의 직원으로 정식 고용돼 소송 업무를 전담하는 것. 이런 경우는 ‘완전 범죄’에 해당돼 법원뿐만 아니라 수사기관도 어쩔 도리가 없다.

:소송대리인의 자격을 규정한 민사소송법 조항(일부):

제87조(소송대리인의 자격) 법률에 따라 재판상 행위를 할 수 있는 대리인 외에는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

제88조(소송대리인의 자격의 예외) ①단독판사가 심리·재판하는 사건 가운데 그 소송 목적의 값이 일정한 금액 이하인 사건에서, 당사자와 밀접한 생활관계를 맺고 있고 일정한 범위 안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당사자와 고용계약 등으로 그 사건에 관한 통상 사무를 처리·보조하여 오는 등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법원의 허가를 받은 때에는 제87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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