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희망이다]<下>소나무숲 파괴 우려

  • 입력 2005년 4월 5일 0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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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송정동 ○○부대 인근 야산.

20년 이상 된 소나무 수백 그루가 전기톱에 의해 힘없이 쓰러져 나갔다. 이들 소나무는 다시 1m 크기로 잘려 무더기로 쌓인 채 비닐로 씌워졌다.

휴일인데도 군인과 산림청 공무원 등 200여 명이 재선충병(材線蟲病)에 감염돼 말라 죽은 소나무를 훈증(燻蒸) 처리하는 현장이다.

이어 헬기를 타고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산림을 돌아봤다.

군데군데 소나무가 싹쓸이로 베어져 마치 스키장 슬로프를 연상케 했다. 아직 베어내지 않은 숲은 군데군데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애써 가꾼 우리의 소중한 숲을 덮친 재선충병 피해 현장은 말 그대로 참혹했다. ‘소나무 에이즈’로도 불리는 재선충병은 현재 서쪽으로는 지리산에서부터 북쪽으로는 경북 포항에 이르기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전국 40개 시군에서 이 병이 발견됐으며 피해 규모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5000여 ha에 이른다. 피해 나무는 20만 그루 이상.

이 병이 한국에 상륙한 것은 1988년. 부산의 한 동물원에서 재선충이 달라붙은 일본원숭이를 들여온 것이 발단이었다.

재선충은 길이가 1mm도 안 되는 기생충으로 솔수염하늘소를 매개로 소나무에 전파된다. 나무 속에서 수분이동통로를 막아 1년 안에 100% 말라 죽게 하는데 아직까지 마땅한 방제약이 없어 소나무 에이즈란 별칭이 붙었다.

일본에서는 1905년에 이 병이 처음 발생했으나 1970년대에야 원인균을 발견했다. 결국 훗카이도(北海道)를 제외한 전국의 소나무가 사실상 전멸됐다. 대만에서는 수종(樹種)을 모두 바꿔야 했다.

현재 산림청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펼치고 있는 저지 노력은 ‘전쟁’을 연상케 한다.

산림청은 올해 초 ‘재선충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하루 평균 2500명을 현장에 투입해 피해 나무에 대해 소각, 파쇄, 훈증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나무를 토막 내 약품처리한 뒤 비닐로 덮어 기생충이 죽도록 하는 훈증 처리의 경우 나무 한 그루를 처리하는 데 3∼4시간이나 걸려 작업이 더디다.

당국은 현재 재선충병 발생지역의 피해 나무와 주변 소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는 한편 전남 광양·구례∼경남 함양·합천·거창·밀양·양산∼경북 청도·경주에 이르는 3차 저지선을 마지노선으로 정해 매일 항공기를 이용한 관찰 및 방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공위성 등 과학적 장비도 총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한정된 인력과 자원 때문에 한계가 있게 마련. 특히 감염된 소나무가 건축자재 등으로 다른 곳에 옮겨지면서 피해지역이 확산될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적인 관심이라고 현장에선 호소하고 있다.

산림청은 재선충병 발생지역 5km 밖에서 감염된 소나무를 신고하면 50만 원, 피해 나무를 외지로 반출하는 행위를 신고하면 1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 국민의 신고를 기다리고 있다(신고전화 국번 없이 1588-3249). 또 올해 안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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