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범-민호 씨 “우리 父子에게 마라톤은 축복”

  • 입력 2005년 3월 1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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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달리니 행복”“아무리 멀고 험한 길이라도 함께 달리면 힘들지 않아요.” 아마추어 마라토너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나란히 서브스리를 기록한 한승범(왼쪽), 민호 씨 부자. 아버지 한 씨는 아들의 호소에 새 삶을 살게 됐고 민호 씨는 아버지의 권유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15일 서울 남산에서 조깅으로 몸을 푼 한 씨 부자가 손을 맞대고 있다. 이종승 기자
“함께 달리니 행복”
“아무리 멀고 험한 길이라도 함께 달리면 힘들지 않아요.” 아마추어 마라토너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나란히 서브스리를 기록한 한승범(왼쪽), 민호 씨 부자. 아버지 한 씨는 아들의 호소에 새 삶을 살게 됐고 민호 씨는 아버지의 권유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15일 서울 남산에서 조깅으로 몸을 푼 한 씨 부자가 손을 맞대고 있다. 이종승 기자
“마라톤으로 새 인생을 찾았습니다. 또 달리면서 아들과 하나가 됐으니 마라톤은 우리 부자에게 축복인 셈이죠.”

아버지 한승범(韓承範·52·서울 중구 신당동) 씨와 아들 민호(民浩·25) 씨. 15일 봄빛이 완연한 서울 남산에서 만난 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틀 전 뛰었던 2005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6회 동아마라톤대회 얘기를 꺼냈다.

이 대회에서 아버지는 2시간 55분 46초, 아들은 2시간 59분 7초로 완주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로 서브스리(sub-3·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를 기록한 것만도 대단한 일. 그런 마당에 국내 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부자가 나란히 서브스리의 주인공이 됐으니 기쁠 수밖에….

그러나 정작 이들 부자가 기뻐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달리며 서로의 존재를 절실하게 느꼈고 둘이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한 씨는 한때 어두운 삶을 보냈다. 폭력전과 7범으로 14년 8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낸 전과자 출신이다. 그는 2001년 봄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했을 때를 떠올렸다.

“군 복무 중인 민호 면회를 갔어요.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이젠 제발 깨끗하게 사세요’라며 울더라고요. 20년 전 이혼하는 바람에 엄마와 헤어졌고 내가 교도소에 들락거리느라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는데도 너무 잘 커 준 아들이 대견했어요. 그 마음을 모른 체할 수 없었습니다.” 속초에서 사채업을 했던 한 씨는 서울에서 공사장 막일부터 시작했다. 고향에 내려가면 건달 생활을 한 과거로 다시 돌아갈 것 같아서였다. 집도 없어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어요. 돈을 조금 모아 남산 밑에 단칸 셋방을 얻으니 그렇게 좋더라고요. 지난해엔 신당동에 방 두 개짜리 월세를 얻어 팔순 어머니까지 모시고 있어요. 이제 사람답게 사는 거죠, 뭐.”

한 씨는 3년 전 장애인과 고아, 고학생들을 돕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아사모)’을 만들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의미도 있었다고 했다. 마라톤도 이때 시작했다. “남산 순환도로에서 뛰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래서 나도 한번 뛰어봤는데 달리니까 딴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미친 듯이 매달렸습니다.” 스포츠용품 회사 매장에서 일하는 아들을 마라톤에 끌어들인 것은 지난해. “네 소원을 들어줬으니 이제 네가 아버지 소원을 들어줄 때”라고 설득했다는 것.

“처음엔 뛰기 싫었어요. 다른 할 일도 많은데…. 그런데 막상 뛰어보니 너무 좋아요. 아버지와 함께 고통을 이겨내며 결승선까지 뛰다보면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 같거든요.”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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