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사패산터널 반대 투쟁’ 접은 보성 스님

  • 입력 2005년 2월 18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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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공사에 반대해 2년 가까이 현장 농성을 벌였던 보성 스님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렇게 반대 투쟁한 게 최선이었는지 후회스러운 점도 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공사에 반대해 2년 가까이 현장 농성을 벌였던 보성 스님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렇게 반대 투쟁한 게 최선이었는지 후회스러운 점도 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에 반대하는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은 정부와의 ‘환경영향 공동조사’ 합의로 일단락됐지만 세간엔 뒷공론이 여전하다. 환경훼손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법원 판결까지 뒤집는 막무가내식 반대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 천성산 터널공사 문제의 ‘쌍둥이’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공사 반대의 첨병으로 근 2년간 현장 농성을 벌였던 보성(普城·47) 스님을 만났다. 천성산 문제가 계속 꼬인 데에는 도대체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그의 ‘사패산 투쟁’ 경험을 통해 추량(推量)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성과없이 욕만먹어 자괴감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을 보니 그분 결기가 대단하더군요. 하지만 걱정입니다. 그 스님 건강도 그렇고, 천성산 터널공사의 최종 결론은 또 어떻게 될지…. 이를 지켜보자니 새삼 ‘내 꼴’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요.”

보성 스님은 심정이 착잡하다고 했다. 그가 지금 자괴하는 ‘내 꼴’이란 “근 2년이나 터널공사 반대 농성을 했지만 성과도 없고 주변으로부터 욕만 먹은 데에다 건강까지 해친 상황”을 말한다. 사패산과 천성산 터널공사는 둘 다 불교계가 적극 반대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공히 ‘대안 노선 검토’를 공약한 이후 장기간 공사가 지연됐지만 사패산의 경우는 그의 농성 중단 직후 공사가 재개됐다. 2003년 12월 22일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이 노 대통령의 방문을 받고 정부 시책에 협력할 뜻을 밝힌 것을 계기로 그는 경기 양주시 사패산 터널공사 농성 현장에서 ‘무조건 철수’해 자신의 원래 거처인 화성시 약수암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2002년 사패산 현장에서 농성하던 때의 보성 스님. 뒤쪽으로 ‘노 터널’이라는 영어 문구의 현수막을 내건 망루가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율 스님에 대한 걱정 끝에 자연스럽게 그의 ‘사패산 투쟁’ 얘기로 옮겨갔다. 본인 스스로 ‘행동대장’이라더니 말투 자체가 꾸밈없고 시원시원했다.

―사패산 농성은 무슨 계기로 시작한 것입니까. 원래 환경운동에 관심이 컸나요?

“원래 조계종 내부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해결사라고 할까, 행동대장이라고 할까 그런 역할을 많이 했어요. 2001년 말에서 2002년 초 큰스님 몇 분이 저를 보자고 하더니 사패산 터널공사를 반대해야겠으니 그걸 좀 맡아달라는 겁니다. 당시는 사패산이 뭔지도 몰랐고 농성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래서 현장에 비구니 스님 한두 분을 보내 몸으로 막아보라고 코치만 했는데 얼마 뒤 그 비구니 스님들이 건설회사 용역들에 의해 끌려나온 겁니다. 조계종 차원에서 항의대회가 열렸는데 몇 분이 ‘기왕 당신이 코치했으니 책임져야 할 거 아니냐’고 해 어쩔 수 없이 현장에 가서 농성을 시작한 거죠.”

보성 스님은 2002년 2월 사패산에 들어가 ‘농성 요새’를 만들었다. 망루를 세우고 철조망을 둘렀으며 수십 개의 액화석유가스(LPG)통과 시너통을 비치해 ‘침입’에 대비했다. 그해 여름까지 이곳에서 그를 비롯한 불교계 인사, 환경단체 회원 수십 명이 함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스님이 휴가비를 주며 “그동안 고생했으니 쉬고 오라”고 하기에 휴가를 다녀왔는데 스님 몇 분과 정부 사이에 △노선위원회를 만들어 3개월간 노선을 검토하며 △농성장은 즉각 철거한다는 등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게 2002년 8월 14일의 일이다.

“농성 하라고 부추길 때는 언제고, 정작 현장을 지킨 내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몇몇이 ‘뒷전’에서 그런 합의를 했다니 이게 무슨 ‘거래’인지…. 그 배경에도 의심이 가고, 결국 나만 이용당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못 나간다’고 버텼죠. ‘중 고집’이 나온 거죠. 그때부터 단신으로 농성을 한 겁니다.”

―다음해 12월까지 농성했으니, 결국 스님의 오기 때문에 사패산 터널공사가 1년 반이나 지연된 거네요. 경위야 어쨌든 정부와의 합의까지 뒤집은 것은 잘못 아닙니까.

“솔직히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했던 반대운동이 국력 낭비가 아니었나 하는 후회가 듭니다. 하지만 교훈은 있더군요. 대안과 행동 없는 환경운동은 결국은 실패한다는 겁니다. 환경 문제를 제기하려면 확실하게 대안을 강구한 뒤에 할 일이고, 일단 문제를 제기했으면 끝까지 행동으로 이를 관철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공사전 이해당사자와 대화를

그는 혼자 농성하는 동안 사패산 관통 터널의 대안으로 불교계와 환경단체 등이 제시한 ‘대안 노선’ 두 곳을 직접 답사해 봤다고 한다. 그중 사패산 자락을 둘러가는 노선은 계곡을 훼손하기도 하지만 굽이가 심해 도로로 기능할 수 없고, 의정부 시내를 우회하는 노선은 군부대 등에 막혀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 “결국은 제대로 된 대안 연구 없이 우선 행동에 들어갔던 것이라고 봐야죠. 그러니 그 행동이 오래가지 못하고 중도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당초 불교계의 사패산 터널공사 반대 의지는 강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나중에 보니 사패산에는 터널이 뚫리면 직접 피해를 보게 되는 사찰들이 있는데, 최초에는 그 몇몇 사찰에서 반대가 시작된 것 같더군요. 그게 종단 차원에서 공감을 얻게 된 데에는 근래의 개발붐으로 전국 명소의 사찰 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돼 간다는 불교계 전반의 위기의식이 반영됐다고 봅니다. 정부가 사업 추진에 앞서 사찰을 포함한 이해 당사자나 환경단체 등과 대화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게 근본적인 문제죠. 여기에 정치권의 이해득실까지 겹치다보니 문제가 더욱 꼬이게 됐던 것이라고 봅니다.”

―정치권의 이해득실이란 건 또 무슨 말씀인지요.

“내가 농성에 들어갈 때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인 수경 스님이 많이 격려해줬는데, 나중에 수경 스님의 말로는 대선 후보 시절의 노 대통령과 서울 진관사에서 회동했었다는 겁니다. 거기서 노 대통령이 사패산 터널공사 등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는군요. 아마도 불교계의 표를 의식한 것이겠죠. 어쨌든 노 대통령의 약속 때문에 공사가 한참 지연되긴 했으니, 불교계 체면은 살려준 셈이죠.”

―지금 사패산 터널공사는 당초의 안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결국 공사 지연에 따른 예산 낭비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국책사업이란 게 함부로 물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사실 그런 종류의 비난은 농성 당시에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농성장에 그 지역 이장(里長) 수십 명이 들이닥친 적이 있어요. ‘대안이 뭐냐’고 따지는데 정말 할 말이 없더군요. 환경운동을 하는 데에도 지역 주민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절감하겠더라고요.”

‘뜻하지 않게 체험한 환경운동’의 현장에서 그가 얻은 결론은 이런 것이라고 한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만큼이라도 환경보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생긴 것은 높게 평가해야지요. 우리나라 자동차 증가율은 도로 증가율보다 항상 7%가 많다더군요. 도로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늘어나는 자동차를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죠. 개발의 의미와 가치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사적 이해를 뒤에 숨기거나 제대로 된 대안 없이 행동이 앞서다 보면 결국은 독단으로 흐르게 된다는 점, 바로 그것이 제가 몸으로 얻은 교훈입니다.”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보성스님은▼

△1958년 충남 서천군에서 출생(속명 김찬태)

△1979년 전남 백양사에서 출가.△1999년∼현재 경기 화성시 약수암 암주

△2002년 2월 사패산 터널 반대 현지 농성 시작

△2002년 8월 사패산 터널 반대 단신 농성 돌입

△2003년 12월 사패산 터널 반대 농성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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