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도시락 받은 어린이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 쪽지

  • 입력 2005년 1월 13일 18시 01분


코멘트
“집에 없어 대접도 못하고…”‘부실 도시락’ 파문이 빚어진 전북 군산 시내에서 지난해 12월 결식아동들이 도시락을 먹은 뒤 자원봉사자들에게 보낸 감사편지들. ‘저희들 때문에 너무 고생을 많이 하시게 하셔서 죄송합니다. 저도 훌륭하게 자라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어른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군산=연합
“집에 없어 대접도 못하고…”
‘부실 도시락’ 파문이 빚어진 전북 군산 시내에서 지난해 12월 결식아동들이 도시락을 먹은 뒤 자원봉사자들에게 보낸 감사편지들. ‘저희들 때문에 너무 고생을 많이 하시게 하셔서 죄송합니다. 저도 훌륭하게 자라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어른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군산=연합
‘도시락 아주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전북 군산시에서 결식아동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해 주는 자원봉사를 하는 최모 씨(53)는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수거한 빈 도시락들을 열다 그만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아주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항상 감사히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정성이 가득 담긴 10여 통의 편지엔 비록 부실한 도시락이지만 불만보다는 감사함을 먼저 느끼는 고운 동심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이날은 바로 문제가 된 ‘건빵 도시락’(본보 13일자 A8면 참조)이 점심으로 배달된 날이었다. 건빵과 메추리알 4개, 단무지 채, 김치볶음 등이 반찬의 전부인 도시락을 먹고도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정성을 담아 감사의 글을 남긴 것.

최 씨는 “자식을 둔 부모로서 차마 반찬으로 건빵이 나온 도시락을 내밀기가 부끄러웠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해 하기는커녕 고마워하는 어린이의 눈빛을 마주 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군산지역의 경우 이날 말고도 매일 평균 20∼30여 통의 감사편지가 전달돼 도시락을 배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피로를 풀어 주곤 한다.

한 자원봉사자는 “부실 도시락 파문이 불거진 것도 어린이들이 불평을 터뜨려서가 아니라 보다 못한 자원봉사단체에서 언론에 제보했기 때문”이라며 “결식 어린이들은 상처 받기 쉬운 만큼 어른들이 세심한 부분까지 더욱 신경을 써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13일 기자가 만난 군산지역의 결식아동들은 도시락에 대한 불만 대신 한결같이 “추운 날씨에 집에까지 도시락을 배달해 주는 분들이 너무 고마워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송웅재(宋雄宰) 군산시장 권한대행(시장은 수뢰혐의로 구속 중)은 누리꾼(네티즌)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13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시 예산으로 배달 운영비를 지원하고 공무원들을 동원해 도시락을 배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12일 “운영비 500원을 제외하면 군산은 (도시락 품질이) 양호한 것 아니냐”고 발언했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13일 ‘방학 중 아동급식 부실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급식 공급업체는 미리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급식 메뉴를 제출한 뒤 적합성 여부를 점검받아야 한다.

또 전국 시군구 자활근로인력과 직장체험프로그램연수인력 등 8000∼1만2000여 명이 추가로 아동급식 관리 인력으로 배치된다. 현재 급식관리 인력은 3600여 명이다.

복지부는 이와 함께 민간 사회복지사와 급식참여 단체, 통장, 이장, 반장, 지역사회복지단체, 학교 등이 참여하는 ‘급식지원 지역협력체’를 구성키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3만9000명이던 아동급식 대상자가 25만 명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문제가 빚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군산=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