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친절하게… 미소띤 법정

  • 입력 2004년 11월 19일 18시 41분


서울고법 형사10부 법정에서는 ‘재판은 당사자들에게 재판의 내용과 결과를 잘 알려줄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재판장은 재판 중간중간에 피고인뿐 아니라 방청객들을 위해서도 “그 뒤까지 잘 들립니까”라고 묻곤 한다. 가운데가 손기식 부장판사. 박주일기자
서울고법 형사10부 법정에서는 ‘재판은 당사자들에게 재판의 내용과 결과를 잘 알려줄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재판장은 재판 중간중간에 피고인뿐 아니라 방청객들을 위해서도 “그 뒤까지 잘 들립니까”라고 묻곤 한다. 가운데가 손기식 부장판사. 박주일기자
법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판사에 대한 기존 이미지는 ‘무표정에 검은 법복’. 그러나 일부 판사들은 이런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부드럽고 친절한 법정’을 만들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서울고법 수석부인 형사10부(부장판사 손기식·孫基植)는 언제나 재판을 예정시간(오전 10시)보다 20분 일찍 시작한다. 선고받는 피고인들에게 판결 이유를 한마디라도 더 설명해 주기 위해서다. 사건이 많아 시간에 쫓기다 보면 자칫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4·15총선 선거법위반 사건의 선고가 한꺼번에 몰린 16일. 손 부장은 불구속 피고인들의 출석을 부른 뒤 상고절차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 법원의 판결이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피고인들은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어 “불구속 피고인들은 1주일 안에 판결문을 신청하면 법원에서 판결문을 집으로 보내줍니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판결문을 본 가족들과 또다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원하는 경우에만 판결문을 보내주겠다는 배려다.

판결문을 읽을 때 손 부장은 자주 피고인과 눈을 맞춘다. 피고인이 판결 내용을 이해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벌금형을 선고받는 피고인에게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라”는 충고도 빼놓지 않는다.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쉽게 설명해 준다. ‘항소 기각’이라는 짤막한 주문(主文)만 읽고 끝나는 다른 법정의 풍경과는 다르다. 판사들의 판결문도 친절해졌다.

한 번이라도 판결문을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판결문 문장이 얼마나 길고 어려운지 잘 안다.

하지만 의료사건 전담부인 서울고법 민사17부(부장판사 구욱서·具旭書)의 판결문은 비교적 짧고 현대적인 문장으로 짜인다.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가사(만약)’라는 생소한 표현이나 ‘∼하지 아니할 수 없다’와 같은 이중 부정문은 거의 쓰지 않는다.

1995년 3월 사법연수원이 신임법관 연수 자료로 만든 ‘새로운 판결서 작성 양식’은 “판결서는 되도록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 문장은 짧고 간결하게 작성해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건당사자도 이해하기 쉽도록 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결문은 아직 어렵고 문장이 매우 길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판결 과정의 이런 작은 변화야말로 시민들이 ‘사법개혁’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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