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한국노동계 ‘왕자병’ 떨쳐낼까…

  • 입력 2004년 9월 9일 18시 38분


“한국의 노동운동은 ‘왕자병’ 환자로 치부되며 고립무원의 상태에 갇혀 있다.”

한국 노동운동계에서 ‘마지막 정통 좌파’로 평가받고 있는 박승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이 최근 계간 ‘당대비평’ 가을호 기고문에서 던진 통렬한 일침이다.

박씨의 자성론을 필두로 최근 노동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동운동 대선배들’의 뼈아픈 충고가 잇따르고 있다.

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씨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영국처럼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대중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때 민주노동당 단병호, 심상정 의원과 함께 민주노총 중앙파의 3대 핵심으로 불렸던 문성현 민노당 경남도당 대표도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적 분립이 대중과 유리돼 가는 측면이 너무 크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정규직 중심의 독점적 노동운동을 지양하고 조직에서 소외된 대다수 노동자를 껴안으며 범국민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는 당부라고 할 수 있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노동계의 양대 축 중 하나인 한국노총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주 기자와 만나 개인적 소신임을 전제로 “고임금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하며 동일 산업의 비정규직과 저임금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애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인들과의 회동에선 “중요한 해외자본 유치활동에 노총도 동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변화의 싹들이 실질적인 결과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 자성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실례로 황광우 전 민노당 연수원장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 연구원이) 노동운동을 씹어 먹지 못해 분해하는 ‘조중동’의 언어를 사용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잉태되고 있는 변화의 싹을 노동계가 어떻게 키워 낼지,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주목된다. 기왕이면 이런 움직임이 한국 노동운동을 질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종훈 사회부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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