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선한승/새국면 맞은 노사관계

  • 입력 2004년 8월 9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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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례없는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던 노동계의 여름투쟁이 끝났다. 병원, 지하철에 이어 20여일간 파업을 지속했던 LG칼텍스 노조가 6일 파업종료를 선언했다. 올 하투, 마지막 남은 대한항공 노조도 결국 파업투쟁을 접었다.

올해 때 아닌 하투가 전례 없이 노사현장을 달구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던져주었다. 이제 선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명분 없는 노동운동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결국 실패한다는 사실을 깊이 각인시켰다. 미국에서 전투적인 노조투쟁을 이끌고 있는 전미자동차노련(UAW), 세계노동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금속노조(IG Metall) 분규도 따지고 보면 여론의 향배가 결정적인 해결변수가 되었다.

▼‘대화와 타협으로 수습’ 실마리▼

한국의 노사관계 경쟁력은 세계 최하위다. 스위스 국제경영원(IMD)은 2003년과 2004년 2년 연속 조사대상 60개국 중 한국의 노사관계 경쟁력을 최하위로 꼽았다. 우리는 파업으로 인한 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가 111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우리 기업인도 불안한 노사관계 때문에 우리나라를 떠나고 있다. 우리 경제는 극심한 내수침체에다 수출경기까지 악화돼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사관계까지 악화된다면 우리 경제는 더욱 침체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그러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는 파업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필자는 현재의 노사관계에서 변화되고 있는 양상을 잘 살펴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대화와 타협으로 분규가 마무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감행됐던 파업의 마무리를 보면, 경위야 어찌되었든 공권력에 의한 구속과 공장 폐쇄 등 극한적인 방법보다는 노조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파업 자진철회 형식으로 해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면에는 노사정의 리더십 교체가 자리하고 있으며, 국민이 인내한 가운데 정부가 꾸준히 주장해 온 노사관계의 패러다임 변화가 한몫을 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양대 노총, 경영계, 노동부 모두가 노무현 정부에 들어 지도부가 교체됐다. 이들은 모두가 투쟁적 경직적 노동관을 탈피한, 유연한 전문가그룹으로 채워졌다. 여기에다 올해 눈에 띄게 증가한 산별교섭 분위기도 노사협상의 전문성을 한 차원 높게 이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노사현장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보다 안정된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노사정의 뼈를 깎는 자기성찰이 있어야 한다. 먼저 노동계는 이번 노사분규에서 기대했던 소득을 얻지 못하고 이른바 ‘백기투항’이라는 여론의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가슴깊이 새기기를 바란다. 여론이 질타했던 부문은 소위 노동귀족으로 볼 수 있는 고임금 섹터에서 과도한 임금인상을 내걸고 파업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경제현실에서 임금보다는 고용안정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 시점이다.

▼후진적 ‘직권중재’ 탈피해야▼

다음으로 경영계는 자체적으로 파업을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직권중재나 공권력, 더 나아가 우호적인 외부여론에 기대어 분규를 해결하려는 지극히 의타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점을 자성해야 한다. 자율이 아닌 타율에 의한 노사관계는 언젠가는 깨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정부가 이번 노사분규를 과거처럼 공권력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끝까지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인내의 노사정책을 구사했던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도 국제노동기구의 시빗거리가 되고 있는 직권중재가 위력을 발휘하는 후진성을 하루빨리 탈피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제 정부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각오로 노사관계제도의 선진화에 박차를 가해주기를 고대한다.

선한승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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