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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27일 21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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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구 관교초교 노경래(盧景來·58)교장은 과학교육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이 늘 못마땅하다.
노 교장은 과학교육 발전을 위해 평생을 힘써 온 인물. 그는 스스로 “35년의 교직생활에서 ‘과학교육’을 빼 놓으면 별로 할 말이 없다”고 얘기한다.
노 교장은 어릴 때 노벨과학상에 대한 꿈을 꿨다. 에디슨이나 퀴리부인의 전기를 통해 발명품 하나가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느꼈다.
교사가 된 뒤에도 과학에 대한 동경은 계속됐다.
그는 1970년 경기 시흥시 소래초교에 부임하면서 과학교육에 대한 열정을 현장에 접목시켰다. 그에게 배운 학생들이 경기도 과학실험실기대회에서 71, 72년 연속 우승을 거뒀다.
73년 그는 낙도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주기 위해 경기 옹진군 대부도 대부초교 근무를 자원했다.
가장 먼저 창고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과학실험 기구를 꺼내 전국 처음으로 섬 학교에 과학실험실을 만든다.
이 소식이 당시 문교부 과학교육 담당자에게 알려졌고 한국에 파견 나와 있던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 지원관이 섬을 방문해 실습기구를 지원했다.
과학교육에 대한 그의 노력으로 대부초교는 전국 과학실험실기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적을 낳는다. 섬 아이들이 육지의 쟁쟁한 아이들을 제치고 우승하자 동네에서는 마을잔치가 열렸다.
“개구리를 잡아 해부해보고 무심이 지나친 식물을 관찰하면서 아이들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더군요.”
이런 공로로 그는 1987년 제1회 대한민국 우수과학교사상을 수상한다. 86∼94년 9년간 자연과 교과서 심의 및 집필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늘 학생들에게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독서를 해야 미래를 보는 눈이 생긴다는 평소 신념 때문이다.
그래서 부임하는 학교마다 과학실험실 못지않게 독서실을 갖추는데 노력해왔다.
그는 “그동안 교육정책이 과학교육을 너무 경시해왔다”고 주장한다.
“문교부에서 교육부로 바뀌면서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조차 없어졌고요.”
그는 “현재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중등교육과에서 과학교육담당 장학관과 장학사 1, 2명이 과학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조선시대 율곡 선생이 10만양병설을 주장한 것처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도 100만명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자 바람이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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