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살림살이/예식장]사라진 ‘5월 대목’

  • 입력 2004년 5월 20일 20시 02분


불황(不況)의 그늘이 어느 때보다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 그동안 불황을 안타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인식되던 예식업계와 학원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양상들은 우리사회의 불황의 그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다수의 예식장들이 폐업 직전까지 가 있는가 하면 학원가에서는 학생들을 몰아주는 속칭 돼지엄마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식장 업계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A웨딩홀.

주말 피크시간인데도 200석 규모의 홀 3개 중 한 곳에서만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피로연 업무를 담당하는 김모씨(37)는 “1, 2년 전만 해도 주말엔 1시간 간격으로 결혼식을 했는데 올해는 대목인 5월에도 손님이 없다”며 “음식점 전업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경기침체와 실업대란으로 중하류층이 결혼을 미루는 사례가 늘고,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고조되면서 일반 예식장의 결혼식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반면 고급 예식장이나 무료 예식장은 올여름까지 예약이 꽉 차 있는 등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북 지역 일반 예식장들이 심각한 상태.

예식장연합회측은 “강북의 450여개 예식장 중 20여개를 제외한 95%의 예식장들이 개점휴업인 셈”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결혼식 비용이 최소 2500여만원인 특1급 호텔이나 강남의 고급 예식장 등은 올여름까지 예약이 대부분 끝난 상태.

서울 서초구 JW메리어트 호텔은 10월까지 주말 예약이 찼으며,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은 7월까지 평일 예약률도 80%를 넘는다.

비용이 저렴한 동문회관이나 무료예식장 등을 찾는 이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무료결혼식추진운동본부 이탁인 본부장은 “비용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예비부부들이 많다”며 “지난해에 비해 무료결혼식 문의도 두 배 정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일반 예식장들이 장삿속만 챙겼던 행태도 고객이 등을 돌리게 된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호기(金晧起·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결혼식은 한 시대의 소비문화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이콘”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부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결혼 계층도 양극으로 나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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