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現장성 비리수사]軍개혁이냐 특정인맥 정리냐

  • 입력 2004년 5월 16일 18시 53분


지난해 12월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 참석한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들. 최근 전현직 장성들을 겨냥한 고강도 수사가 진행되면서 군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2월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 참석한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들. 최근 전현직 장성들을 겨냥한 고강도 수사가 진행되면서 군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최근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전현직 장성들에 대한 군 검찰과 민간 검찰의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현역 육군 대장이 사상 처음 구속 기소됐고 예비역 장성 3, 4명이 출국 금지됐다.

군 안팎에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본격적인 군 개혁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보는 평가가 많지만 일각에선 김대중(金大中) 정권 때 형성된 호남 군맥(軍脈)에 대한 정리가 진행 중인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없지 않다.

▽긴장하는 군부=국방부 검찰단이 14일 한미연합사령부 신일순(申日淳) 부사령관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한 사건은 창군 이래 현역 육군 대장에 대한 최초의 사법처리라는 점에서 충격을 던지고 있다.

군 검찰에 따르면 신 대장은 1999년 12월부터 최근까지 3군단장(중장)과 연합사 부사령관(대장)으로 재직하며 비서실 운영비, 복지기금, 기업 위문금, 한미합동훈련비 등 공금 1억700여만원을 개인 회비, 선물 및 접대비, 가족 레저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영길(曺永吉) 국방부장관은 신 대장 기소 전인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혐의가 관행을 넘어서 사법처리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당수 장성들은 여전히 신 대장의 혐의가 ‘관행’ 수준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장성은 ‘참모가 건넨 비서실 운영비를 지휘활동비로 여겼다’는 신 대장의 진술이 수긍이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장성은 신 대장이 각종 판공비 덕분에 절약할 수 있었던 월급저축액도 횡령액으로 간주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선 신 대장의 구속이 단순한 법적 잣대가 아닌 ‘다른’ 기준으로 이뤄졌을 개연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한 예비역 장성은 “DJ 정부 시절 잘 나가던 호남 출신 군인들이 이번 정부 들어 잇따라 옷을 벗자 광주고 출신인 신 대장도 조만간 문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신 대장과 비슷한 공금 유용 혐의로 지난해 광주일고 출신 이정 전 국방부 합동조사단장(소장), 광주고 출신 이길재 전 육군 헌병감(준장), 전남 순천고 출신 위성권 전 육군 법무감(준장)이 잇따라 옷을 벗었다.

역시 광주고 출신으로 DJ정부 시절 군 요직을 거친 이원형 전 국방품질관리소장(예비역 소장)도 지난해 말 군납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또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인사 청탁 및 공금 유용 혐의 등으로 수사 중인 예비역 장성 중 2명 정도가 호남 출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남 군맥 정리설의 또 다른 근거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퇴역한 육군 장성 68명 중 호남 출신이 20명으로 가장 많다는 점이다. DJ 시절 광주고와 광주일고 출신들이 준장 진급자 1, 2순위였던 점에 비춰볼 때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체 퇴역 장성 108명을 놓고 볼 때 영남이 37명으로 호남 27명보다 많은 것은 해군의 영남 출신 퇴역자가 호남 출신보다 10명 더 많은 데 따른 것이다.

▽군 비리를 보는 청와대의 시각=일부에선 고질적인 군 장성들의 비리에 대해 ‘자기 식구 감싸기’로 일관해온 군에 대해 청와대가 마침내 수술에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방부와 청와대는 공금 유용 등의 혐의로 보직 해임된 김창해 전 법무관리관(준장), 이 전 합조단장, 이 전 육군 헌병감, 위 전 육군 법무감의 사법처리를 놓고 이견을 보인 바 있다.

당시 국방부는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및 전역을 미루다 노 대통령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들은 지난해 11, 12월 전역했고 이 중 김 전 법무관리관은 민간검찰에 넘겨져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신 대장 건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가 이미 알고 있던 사건을 또 다시 대충 마무리하려다가 일이 터진 것이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철우 전 해병대 사령관의 경우만 해도 조 장관은 이미 지난해 군 합조단으로부터 공금 유용 등의 내사 결과를 보고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 장관은 최근 비리 의혹이 불거진 또 다른 현역 대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와 각급 부대의 회계 부정 및 횡령 등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지만 청와대가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올 지는 의문이다.

▽군 개혁으로 이어질까=이미 청와대 내에선 “군 개혁을 더 이상 국방부에 맡겨두기 어려우며 군 사법시스템부터 손대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군내 부정비리 문제를 군 검찰에 맡길 경우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다.

청와대는 이미 주한미군기지 이전, 국방획득분야 개선 등 국방부의 주요 과제들을 국무총리실 등 다른 부처와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 중이다. 청와대의 군 사법 개혁에도 민간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할 전망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가 진정한 군 개혁으로 이어지려면 기존에 관행으로 여겨져 왔던 부분들이 시대 변화와 함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한 군 내부의 합의가 먼저 이뤄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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