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상할머니 1억 한남대 기탁 “자식 수천명 생겨 부자됐어요”

  • 입력 2004년 4월 9일 18시 35분


행상 등을 하며 평생 모은 재산 1억원을 9일 한남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한 임윤덕 할머니. 장학금을 전달한 뒤 휠체어를 탄 채 학교 교정을 돌아보는 임 할머니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대전=지명훈기자
행상 등을 하며 평생 모은 재산 1억원을 9일 한남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한 임윤덕 할머니. 장학금을 전달한 뒤 휠체어를 탄 채 학교 교정을 돌아보는 임 할머니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대전=지명훈기자
“자녀가 없었는데 소원 풀었네. 수천명의 자식들(대학생)이 생겼으니 말이야.”

9일 오후 2시반 대전 대덕구 오정동 한남대 교정. 임윤덕 할머니(80)는 ‘임윤덕 할머니 발전기금 1억원 전달식’이라고 적힌 플래카드 주변에서 재담을 나누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임 할머니는 이날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한남대에 1억원을 전달했다. 대학에 기부하는 돈으로는 크지 않은 액수일 수도 있지만 임 할머니에게는 행상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평생 모은 전 재산이다.

임 할머니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1946년 월남해 부산 등지에서 생선 장사를 시작했다.

결혼을 했지만 자식이 없었고 그나마 의지하던 남편도 73년 먼저 세상을 떠나자 동생들이 있는 대전 유성 근교에 약간의 농토를 마련해 정착했다. 이때부터 밭에서 나온 채소와 청과물시장에서 사온 과일을 유성장(5일장) 등에 내다 팔아 돈을 모았다.

“당신 같은 사람만 있다면 옷 장사 굶어죽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임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았으나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돕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다.

조카 임인숙씨(49)는 “조카 10명 모두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며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호주머니를 열었다”고 말했다.

임 할머니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인숙씨 남매를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다. 이 때문에 인숙씨는 고모인 임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조카들은 “고모가 십수년 전부터 ‘언젠가 대학에 돈을 기탁해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말해 왔다”고 전했다.

임 할머니가 1억원을 기탁하기로 결정한 뒤 그동안 간직해왔던 2개의 통장을 확인한 결과 잔액은 1억213만원. 그야말로 호주머니를 톡톡 털어 기탁한 셈이다.

5년 전부터 퇴행성관절염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는 임 할머니는 발전기금을 내고 난 다음에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한남대 이상윤 총장은 “임 할머니가 재산을 남기지 않고 쾌척한 만큼 사회복지시설 입주를 학교 차원에서 주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남대는 이날 기탁 받은 돈으로 대학 주변에 ‘임윤덕 할머니 집’을 지어 어려운 학생들의 기숙사로 활용하기로 했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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