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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월 20일 1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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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앞에서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회한에 잠겼다. 부모님을 그리면서 참고 참았던 50여년의 세월이 빠르게 스쳐가는 듯했다.
전씨의 어머니 김동수씨는 아들이 전몰군경으로 처리된 뒤 매년 6월 6일 아들의 제사를 지내다 1987년 세상을 떴다. 전씨의 아버지는 1950년에 숨졌다.
전씨는 이어 맏형 환일씨(99년 작고) 무덤에 술을 올리고 생전에 뵙지 못한 데 대해 용서를 빌었다.
성묘를 마친 뒤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던 전씨는 다시 어머니 무덤 앞에 섰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그의 입에서 나지막이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비내리는 고모령’이었다. 노래를 부르다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불렀으면…”이라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1시간가량 부모님을 뵙고 발길을 돌린 전씨는 “부모님이 생전에 나를 걱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북한에서 겪은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무덤을 바라보는 마음이 죄스럽고 한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꾸 묘소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하산했다. 그는 당분간 매일 부모님 묘소를 찾을 예정이다. 그의 얼굴이 다소 어두운 데 대해 동생 수일씨는 “북에 두고 온 자녀들(2남1녀)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형의 귀환에 누구보다 마음을 졸였던 동생 수일씨는 “너무 늦었지만 올 설은 형님을 모시고 부모님께 술을 올릴 수 있게 돼 벅차다”며 “형님이 돌아오도록 애써준 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씨의 면역식에까지 갔던 형수 김순연씨(82·신녕면 완전리)는 “시동생이 살아돌아왔는데 80평생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겠느냐”며 “설에 맞춰 돌아와 더 고맙다”고 좋아했다. 제수 이하자(李夏子·61)씨는 “시숙께서 돌아와 음식을 더 장만했다”며 “설날 아침 큰댁에 모두 모여 차례를 올린 뒤 동네잔치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영천시내 곳곳에는 ‘국군포로 전용일씨의 귀환을 환영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영천 시민들은 27일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열 예정이다.
박진규(朴進圭) 영천시장은 “전씨가 고향의 정을 듬뿍 느끼면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영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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