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과거시험' 행사 나설 임금님 뽑던 날

  • 입력 2003년 9월 26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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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과거 재현 행사 임금 선발대회’에 참가한 서울 시민들이 곤룡포를 입고 심사를 받고 있다. 과거 재현 행사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임금을 선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까지는 유명 인사가 임금 역을 맡았다. -권주훈기자
‘조선조 과거 재현 행사 임금 선발대회’에 참가한 서울 시민들이 곤룡포를 입고 심사를 받고 있다. 과거 재현 행사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임금을 선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까지는 유명 인사가 임금 역을 맡았다. -권주훈기자
2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4층 콘퍼런스홀. 서울시가 주최하는 ‘조선조 과거 재현 행사’(10월 5일 오전 11시 창경궁)에서 임금 역을 맡을 사람을 선발하는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한 말씀 해보시죠.”(사회자)

“문무백관들은 듣거라. 오늘의 과거시험은 나라의 인재를 뽑는 것이니 추호의 부정도 없이 엄정하게 치를 수 있도록 유념하라.”(한 참가자)

그 순간, 참가자가 입고 있던 곤룡포 속에서 휴대전화 소리가 울렸다. 긴장이 가득하던 심사장엔 폭소가 터졌고, 사회자는 “조선시대도 역시 정보기술(IT) 강국이었던 것 같다”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이날 행사엔 왕이 되고 싶은 서울 시민 20여명이 모였다. 응모자 150여명 가운데 1차 서류전형 및 사진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간단한 면접에다 걸음걸이와 목소리 심사, 곤룡포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등에 대한 심사를 받았다.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독특한 이름의 주인공인 임금님씨(23). 한 심사위원이 “별명이 아니냐”고 묻자 대학 휴학생인 임씨는 “호적에 올라있는 엄연한 본명”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이름에서 보이듯 이번 과거에서 임금을 맡을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뒤질세라 대학생 김세종씨(19)는 세종대왕과 이름이 같은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전직 부시장, 전직 유명학원 원장, 대학 응원단원, TV 사극 엑스트라, 그리고 30대 여성까지 참가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효령대군파 양녕대군파 등 전주 이씨 후손들과 각종 어가행렬 단골 참가자도 많았다.

경기 시흥시 부시장 출신인 정상석씨(68)는 “해주 정씨는 효령대군과 혼인해 전주 이씨와 인연을 맺은 집안”이라면서 “왕이 된다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30대 여성인 정수진씨는 “실은 왕비도 뽑는 줄 알고 신청을 했는데…”라면서 심사위원의 ‘선처’를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처음 입어보는 곤룡포가 다소 어색한지 걸음걸이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임금 선발의 기준은 165∼170cm의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당당한 체격, 품격이 있어 보이는 얼굴, 우렁찬 목소리, 곤룡포를 입었을 때의 옷맵시, 그리고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과 안목 등이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선발대회에선 양녕대군 18대손인 이병문씨(39·보험회사 직원·서울 은평구)가 임금으로 선발됐다. 이씨는 “조상님께서도 기뻐하실 것 같다”면서 “과거 재현 행사가 이재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10월 5일 오전 11시 창덕궁∼이화사거리∼혜화로터리∼창경궁 구간의 어가행렬에서 왕의 가마를 타고 행차한 뒤 창경궁에서 과거 행사를 주재하게 된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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