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교수 부부 안방서 피살…원한관계 추정

  • 입력 2003년 9월 25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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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생일날 자택 안방에서 아내와 함께 잔혹하게 살해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4일 오후 10시반경 서울 강남구 신사동 622의 6 단독주택 1층 안방에서 이 집 주인인 숙명여대 약대 명예교수 이은옥(李殷玉·73·사진)씨와 부인 이덕(李德·68)씨 부부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둘째아들(32·공중보건의)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이씨 부부는 머리가 찢어지고 함몰돼 있는 등 둔기로 수차례 얻어맞은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왼쪽 손목이 부러졌고 부인 이씨는 범인의 것일 수도 있는 머리카락 한 움큼을 손에 쥐고 있어 범인에게 완강히 저항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도난당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살해현장=이씨는 면바지와 러닝셔츠, 부인은 속옷차림으로 이부자리 위에 누운 채로 숨져있었으며 주변에는 채 굳지 않은 검붉은 핏자국이 여기저기 얼룩져 있었다. 경찰은 이씨는 오른쪽 관자놀이 부분, 부인은 정수리 부위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주방에는 이씨 부부가 누군가와 함께 마시다 남긴 것으로 보이는 커피 3잔이 식탁 위에 놓여있었다.

경찰은 집 앞에 24일 아침신문이 그대로 놓여 있었던 점, 셋째딸(35)이 23일 오전 10시경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다고 진술한 사실, 시체의 상태 등을 토대로 24일 밤 12시를 전후해 이씨 부부가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내용 사이클과 아령 등 운동기구를 제외하고 집 안에는 대부분 낡고 허름한 인테리어 소품과 오래된 가전제품, 주방기구 등으로 가득 차 있어 이씨 부부의 검소한 생활을 짐작케 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체에 대한 부검을 의뢰했으며 장롱에서 피 묻은 손자국 1개와 안방에서 지문 6개, 발자국 1개를 발견해 정밀감식을 의뢰했다.

둘째아들은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아침부터 여러 차례 안부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집으로 찾아가 보니 부모님이 숨져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유족들은 지방에 근무하는 가족의 일정에 맞춰 10월 3일 이씨의 생일파티를 겸한 외식을 하기로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집은 유명 교회, 병원, 식당 등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있는 대지 80평, 건평 90평의 2층 양옥으로 시가 20억원으로 추정된다.

▽경찰 수사=경찰은 장롱 문과 화장대 서랍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 등 패물과 현금 287만9000원이 보석함 안에 그대로 있었던 점 등으로 보아 강도를 위장,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우발적 범행일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으로 보인다”면서 “이씨 부부가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이씨가 평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체부검 결과 ‘두개골 함몰에 의한 과다출혈’이 직접 사인(死因)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흉기에 찔린 흔적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교수는 누구=이씨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63년부터 숙명여대에서 교수와 학장 등을 지냈으며 95년부터 명예교수로 재직해 왔다. 약학 분야 업적을 인정받아 95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이씨의 2남 3녀와 배우자 등 10명은 모두 의, 약학 분야에 몸담고 있다. 두 아들과 3명의 사위, 며느리 1명이 의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3명의 딸은 약사, 또 다른 며느리는 간호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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