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삭막한 도시 색깔 입혀요" 교사-학생 벽화그리기

  • 입력 2003년 8월 10일 21시 27분


“삭막한 도심에 벽화를 그리는 게 너무 너무 재미있어요.”

9일 오후 전남 순천시 동천 죽도봉 건너편 둔치. 초록색 조끼를 입은 학생들과 교사 40여명이 한데 어울려 강변도로 콘크리트 벽면에 벽화를 제작하고 있다.

벽화의 주제는 ‘만인(萬人)의 얼굴’. 가로 1.5m, 세로 2m 크기의 50개 칸 안에 만화 캐릭터 등 다양한 그림과 인간의 희로애락을 형상화할 계획.

벽면에 붙여지는 3000여점의 테라코타(구운 점토)는 이 지역 10개교 학생들이 지난 학기 미술시간에 틈틈이 만든 것이다.

이들은 섭씨 3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에도 아랑곳없이 1.7m 높이의 작업대 위에 올라가 페인트 붓으로 벽을 색칠하고 갖가지 형상의 테라코타 작품을 벽에 붙이며 구슬땀을 흘렸다.

강변도로 옆 산책로를 걷던 시민들은 이들의 ‘야외 미술 수업’을 구경하다 학생들의 손에 이끌려 벽화 그리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삭막한 도심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는 이들은 전남 순천지역 10개 중 고교 학생들과 미술 교사들이다.

2일부터 시작된 벽화 그리기 작업에는 매일 40∼50명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강변도로 벽면에 길이 130m, 높이 2m 규모의 대형 벽화를 18일까지 완성할 예정이다.

동천 강변도로 벽화 그리기 행사는 지난해 여름방학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고 있다. 벽화 제작비용 300여만원은 순천시에서 지원했다.

순천 제일고 2년 이소영양(17)은 “다른 학교 친구들과 우의를 다지고 학교 밖에서 선생님과 함께 현장 학습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며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아름답게 꾸민다는 생각하니 가슴도 뿌듯하다”고 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벽화가 완성되는 18일 밤 동천 둔치에서 시민들과 함께 축하 한마당 행사를 갖는다. 이들은 이날 벽화제작 기획단계에서 제작과정, 에피소드, 작품완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담은 동영상 다큐멘터리를 상영할 예정이다.

박종선(朴鍾渲) 순천금당고 교사(37)는 “제자들이 숨 막히는 입시교육에서 잠시 벗어나 문화활동과 공공기여의 기회를 동시에 누릴 수 있도록 행사를 마련했다”며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내년에는 콘크리트 벽면에 타일 모자이크로 벽화를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순천=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