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영세노인들 등친 40代 영장

  • 입력 2003년 7월 27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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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번에 나라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매달 20만원씩 주는 제도가 생겼어요.”

5월 22일 오전 11시경 대전 대덕구 석봉동 김모 할머니(75) 집. 생활비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서 수집한 박스를 정리하던 김 할머니는 느닷없이 집을 찾아온 40대 공무원의 이 같은 말에 생활이 조금이라도 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김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생활보호대상자)이냐”는 이 공무원의 질문에 “벌써 수년 째 거동이 불편한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살고 있지만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신세 한탄을 하던 차였다.

이 공무원은 “우선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한다”며 할머니의 통장을 건네받아 예금액을 확인했다. 김 할머니는 이 공무원이 인적사항과 전화번호 등을 적은 뒤 통장의 비밀번호를 물어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믿을 수 있는 신분이라고 생각해 알려줬다. 서류 작성에 필요하다고 해 도장도 잠시 빌려줬다.

하지만 이 공무원이 돌아간 뒤 구청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고 얼마 후 수년간 박스를 팔아 모은 440만원이 통장에서 모두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26일 문제의 공무원인 한모씨(43)를 붙잡아 조사한 결과 미리 각 은행의 예금청구서와 신규 통장을 가지고 다니다 도장을 건네받아 청구서에 찍고 통장은 김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바꿔치기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올 1월부터 이달 24일까지 대전을 비롯해 부산과 경주 울산 대구 충남 수원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21차례나 이 같은 범행을 저질러 나홀로 및 영세 노인들로부터 5080만원을 가로챈 한씨에 대해 27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높여주거나 대상자가 아닌 경우 지정받도록 해 준다고 속여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 북부경찰서 형사계 이전구 경장은 “통장의 비밀번호를 물어보면 일단 의심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같은 사기범들이 전국적으로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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