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 이름에 "우리고장을 넣자" 두개의 地名 ‘촌극’

  • 입력 2003년 7월 13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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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아산역’ ‘부산진해신항’ ‘경성대부경대역’….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끼리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양쪽의 주장을 모두 반영해 이름이 붙여진 사례이다.

항만, 역사(驛舍) 등 공공시설의 이름이 이처럼 점점 길어지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자치단체들이 공공시설의 대표성이나 역사성보다는 홍보효과를 노려 자기 지역의 이름을 붙이려는 ‘욕심’으로 인해 이런 현상이 생겨났다.

이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다리가 생기기도 하고 중재 과정에서 엉뚱한 명칭이 붙기도 한다.

한국토지공사 김기빈(金琪彬) 지명연구위원은 최근 한국땅이름학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공공시설의 이름을 둘러싼 갈등을 담은 ‘집단이기주의에 의한 지명 갈등의 사례와 그 해소대책’을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행정구역이 겹치거나 명칭과 다른 지역에 위치한 공공시설 대다수가 ‘나열식 공동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역’이 대표적인 예. 당초 건설교통부는 이 역이 충남 아산시에 있지만 천안시의 생활권에 속해 이름을 ‘천안역’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아산시가 ‘아산역’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2년 가까이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건교부는 아예 천안과 아산에서 한 글자씩을 따 ‘천산역’으로 부르자는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두 지자체가 모두 거부해 결국 ‘천안아산역’으로 잠정 결정했다.

부산과 경남 진해시에 걸쳐 있는 ‘부산진해신항’은 국내용 이름과 국제용 이름이 다르다.

2006년 개항을 앞두고 경남도의회와 진해시의회가 ‘부산신항’이란 기존 명칭에 반발하자 해양수산부가 국내용으로는 ‘부산진해신항’, 국제용으로는 ‘부산신항(Busan New Port)’으로 부르기로 한 것. 전례가 없는 일이다.

2000년 7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평택항’ 역시 수년째 명칭 갈등을 겪고 있다. 경기 평택시 포승면과 충남 당진군에 걸쳐 있는 평택항은 평택지역에 6개, 당진에 4개 등 모두 10개의 선석(부두)을 갖추고 있다.

당진군은 개항 이후 지금까지 “우리 땅에 남의 집 명패를 붙일 수 없다”며 해양수산부에 ‘당진항’으로 분리 독립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분리 독립은 있을 수 없다며 ‘평택당진항’으로의 개명을 추진하고 있으나 두 지자체 모두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명칭 분쟁은 이름 없는 다리까지 만들어냈다.

경남 남해군과 사천시 사이에 위치한 3.4km의 연륙교가 대표적인 예. 4월 28일 개통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없다. 남사대교(남해∼사천간 대교) 이순신대교 등 여러 명칭이 거론됐지만 두 지자체간에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주는 북구 우치동과 삼소동 본촌동 등 3개 동을 통합하면서 ‘건국동’이라고 이름 붙였다. 3개 동이 각자의 이름을 고집하자 아예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제2의 건국운동’에서 이름을 따온 것.

이외에도 경기 안산시 고잔1동과 수원시 곡선동의 분동(分洞) 문제나 경기 고양시 일산구의 분구 문제 등도 명칭 갈등으로 인해 보류되거나 지연되고 있다.

김 위원은 “최근 집단이기주의로 인해 곳곳에서 지명 갈등을 겪고 있다”며 “국력 낭비를 막기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명칭조정위원회를 설치해 각종 지명 분쟁을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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