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도언/무너진 도덕, 무서운 사회

  • 입력 2003년 6월 12일 18시 29분


유괴, 살인과 같은 큰 범죄들이 최근 신문에 자주 보도되고 있다. 자식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던 한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유괴범에게 목숨을 잃었다. 유괴범에게 부모가 돈을 주었는데도 풀려나지 못하고 살해당한 여대생도 있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나 다 키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감히 누가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신용카드 빚을 대신 갚아주지 않는다고 어머니와 할머니를 살해한 젊은이도 있다. 잠에서 깨어 신문을 들여다보기가 두렵다. 누가 대∼한민국을 동방예의지국이며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던가.

▼유괴…살인…'심각한 범죄위기' ▼

흉악무도한 범죄가 왜 늘어나는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갑자기 옮겨온 대한민국의 ‘몸살’ 증상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금수(禽獸) 같은 범죄자들이 설쳐서 국민 각자가 범죄의 대상이 될 위험에 항시 노출된 나라로 바뀐 것이다. 범죄가 잘 일어나는 지역이 비교적 제한되어 있어 그곳에 가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는 선진국과 달리, 모든 범죄가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제 대한민국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책은 무엇인가. 우선, 법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로 우리 사회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원칙은 나라의 ‘척추’이며, 척추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안타깝게도 무법과 무원칙이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신용 없는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를 마구 나눠줘서 생긴 후유증은 결국 범죄 행위의 증가로 나타났다. 유괴 행위를 하면 큰 손해라는 것을 유괴범들에게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원칙을 지속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널리 알려야 한다. 그래야 잠재적인 유괴를 예방할 수 있다. ‘사형제’ 폐지를 운운할 여유가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 사람을 죽여도 자신은 잘하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흉악범죄는 증가한다. 인간이 그리 합리적이지도, 착하지도 않은 존재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반사회적 성격은 정신과 치료로도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 행위에 따른 책임을 법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묻는 것만이 정답이다.

둘째, 성교육처럼 자신을 범죄 행위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호신술을 가르치는 것도 바람직하다. 소모적인 논쟁은 이제 제발 지양하고 생존기술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임을 교육계에 계신 분들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셋째, 구태의연하더라도 도덕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양심과 도덕과 윤리를 국민에게 현재 누가 얼마나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국가의 장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가정에서는 내 자식이 남보다 공부 잘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을 뿐, 윤리나 도덕은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이제는 방송국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나서서 국민의 ‘양심수준 향상운동’을 체계적으로 집행해 나가야 한다. 담배꽁초 버리지 않고, 가래침 뱉지 않으며, 새치기하지 않는 국민을 길러야 유괴나 살인 사건도 해결할 수 있다. 양심과 도덕도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인데 그 훌륭한 정치가들은 그 한 걸음에 대한 말씀이 전혀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법과 원칙-교육 다시 세워야 ▼

넷째, 인간의 탈을 썼다고 다 인간이 아님을, 유감스럽지만 어려서부터 널리 알려야 한다. ‘바퀴벌레’ 수준에 속하는 인간도 있음을 알아야 만일에 일어날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아는 것이 힘’이고 ‘적절한 수준의 의심’은 죄가 아니다. 심지어 아는 사람도 늘 믿을 수는 없다. 안 그러면 ‘면식범’이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다시 한번 강조하면 법과 원칙, 범죄 및 범죄자의 심리에 대한 교육, 도덕교육, 그리고 적절한 수준의 의심이 국민과 국가를 범죄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코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 모두의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피해자들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빈다.

정도언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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