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영안실로 옮겨지던 아들 살린 어머니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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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후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자로 잘못 분류된 대학생이 영안실로 가기 직전 어머니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영남대생 이규창씨(24·대구 동구 신기동)는 18일 오전 학원에 가기 위해 대구지하철 1080호 전동차에 탔다가 연기에 질식돼 정신을 잃고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당시 응급실은 연기에 그을린 채 신음하는 환자들과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의료진들로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경황이 없었던 의료진은 이씨가 사망한 것으로 잘못 판단해 이씨의 얼굴을 흰 천으로 덮었다.

‘신원미상, 38세’의 사망자로 분류된 이씨는 흰 천에 덮인 채 영안실로 옮겨지기 위해 응급침대에 뉘어졌다.

그 무렵 이씨의 어머니 김모씨(54)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집안일을 하다 지하철 참사 소식을 접한 김씨는 학원에 간 아들 이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으나 응답이 없자 대구시내에서 가장 큰 병원인 경북대병원으로 달려온 것.

서둘러 응급실을 둘러보았지만 아들을 찾을 수 없었던 김씨는 신원미상의 사망자가 두 명이 있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사망자 쪽으로 다가갔다. 흰 천 밑으로 비어져 나온 발을 보고 아들임을 직감한 김씨는 흰 천을 들춰보았다. 아들이었다.

아들이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한 김씨는 “내 아들을 살려달라”며 의료진에게 매달렸다.

의료진이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몇 차례 계속하자 아들의 발가락이 움직였다. 이어 응급처치를 받은 이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중대한 고비는 넘긴 상태.

극적으로 아들을 구한 김씨는 “부모들은 발만 봐도 아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며 “같이 병원에 실려 왔던 다른 사람은 죽었는데 내 아들만 살았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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