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수학의 정석’ 저자 홍성대씨 “세계적私學 만들겠다”

  • 입력 2002년 11월 28일 16시 11분


상산고 재학생들에게 줄 ‘정석’ 표지 안쪽에 사인을 하는 홍성대 이사장./전주〓신석교기자
상산고 재학생들에게 줄 ‘정석’ 표지 안쪽에 사인을 하는 홍성대 이사장./전주〓신석교기자
‘수학의 정석’.

수도 없이 쏟아지는 ‘변종’들로 수학 참고서 시장이 요동치는 동안 ‘수학의 정석’은 이름 덕분인지 37년째 연간 100만권이 넘게 팔리는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정석의 저자는 전북 전주시 상산고의 홍성대 이사장(65)이다. 그는 스물여섯살 되던 무렵에 정석을 쓰기 시작해 평생 정석만 썼고 교과과정이 바뀔 때마다 개정 작업을 거쳐 지금까지 3700만권으로 추산되는 정석을 팔았다.

올해부터 고교에 도입된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정석도 대대적인 개편 작업을 거쳤다. 하지만 모두 14권의 책으로 분철된 것 외에는 외형적으로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표지에 나오는 저자 이름도 여전히 ‘홍성대’다. 달라진 것은 책 뒷면에 ‘도운이 이창형, 홍재현’ 두 사람의 이름이 추가된 정도다. 도운이들은 홍 이사장의 사위와 딸이자 서울대 수학과 후배다. 홍 이사장은 그의 대를 이어 정석을 써나갈 저자로 둘을 지목했다.

요즘 홍 이사장은 정석의 개정판 원고를 쓰는 틈틈이 상산고로 내려가 자립형 사립고 1기생이 될 신입생을 맞을 채비를 한다. 정석을 팔아 모은 돈으로 1981년에 세운 상산고는 5월 자립형 사립고 인가를 받았다. 전주시 효자동 상산고 교정에서 건물 신축을 독려 중이던 홍 이사장을 만났다.

● 서울대 수학과교수 교장으로 초빙

-서울 학생들도 지원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360명 모집에 821명이 지원했다. 이중 61%가 전라북도에서 온 학생들이고 다음이 서울로 전체 지원자의 10.6%인 87명이다. 부산 대구 경남북 등 영남 지역에서도 7명이 원서를 냈다.”

-자립형 사립고로서 상산고의 교육 목표는 무엇인가.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리더급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일종의 영재 교육 기관을 지향한다고 보면 된다. 우선 입시에 필요한 과목을 철저히 지도하겠다. 2004학년도부터는 해외 대학으로 바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위해 국제반을 신설할 계획이다.”

-우려했던 대로 입시 명문고가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지도자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기르는 데도 역점을 둘 것이다.”

-영재를 가르치려면 교사진도 훌륭해야 할 텐데….

“현재 교사가 75명인데 강사를 포함해 20명을 추가로 뽑을 계획이다. 특히 수학은 서울대 수학과 교수 4명이 정기적으로 특강을 해주기로 했다.”

-일반 고교와 교육이 어떻게 다른가.

“고교 3년간 모두 232단위를 이수해야 하는데 이중 56단위는 국가가 지정한 내용을 가르친다. 나머지 176단위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 곽병선 전 한국교육개발원장을 팀장으로 교육과정 개발팀을 꾸려 커리큘럼을 짰다.”

-초대 교장으로 서울대 부총장을 지낸 이현구 수학과 교수를 초빙했는데….

“현재 교장 선생님도 유능하신 분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사학으로 발돋움하려면 이에 걸맞은 교장을 모셔와야 한다며 용퇴 의사를 보이셨다. 이 교수는 수학과 4년 후배로 평소 고교에서 머리 좋은 학생들을 수학자로 키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학비 부담은 어떻게 되는가.

“법적으로 전북지역 일반계 고교 공납금의 300% 안에서 공납금을 정하도록 돼 있다. 한달에 30만원 정도가 된다. 학교 1년 예산이 60억원쯤 되는데 이 중 40억원을 공납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20억원은 법인이 부담한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나.

“정석을 써서 번 돈이다. 현재 2만평 되는 상산고의 땅값만도 800억원이다.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면서 기숙사 새로 짓고 건물 리모델링하느라 110억원을 더 쏟아부었다.”

● ‘정석’의 차세대 저자는 딸 내외

정석이 아니면 상산고도 있을 수 없다. 홍 이사장은 집안이 부유했다면 정석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석을 쓰게 된 동기는….

“대학 다닐때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 교사 노릇을 했다. 마땅한 교재가 없어 외국 서적을 들춰가며 문제를 만들고 해설을 붙여 강의용 인쇄물을 만들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책으로 펴냈다.”

-과외 교사를 하면서 별도로 인쇄물까지 만들었다니 놀랍다.

“서울사대부고 교사 한 분이 여학생 5명을 모아 수학 과외를 부탁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들의 성적이 오르자 학생들이 여럿 달려왔다. 일일이 감당해내기 어려워 방학을 이용해 문리대 본관 연구실을 빌려 60명을 모아놓고 특강을 했다. ”

-책 이름은 누가 지은 것인가.

“모 교수와 바둑을 두다 갑자기 바둑돌이 눈에 들어왔다. ‘교수님, 정석이라고 지으면 어떨까요’ 했더니 ‘그것 좋군’ 하셨다. 66년 9월 ‘수학Ⅰ의 정석’이 나왔고 1년 만에 3만권을 팔았다. 3년 후에는 당시 연간 6만권이 팔리는 베스트 셀러였던 정경진 종로학원회장의 ‘수학 완성’을 앞질렀다.”

-정석이 일본 참고서를 베꼈다는 주장이 있다.

“단 한 페이지도 남에게 맡겨본 적이 없다. 처음 책을 펴낼 때 서울대 수학과 교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넣어 공저로 내도 좋다고 하셨지만 거절했다. 내가 죽은 뒤 정석 개편 작업을 셋째딸 내외에게 맡기기로 하고 이번 개정 작업 때 몇 문제 내보라고 해서 참여시켰다. 하지만 기본 골격은 37년간 내가 다듬어온 것이고 문제의 거의 대부분을 내가 다 써서 공저로 하지 않았다. 내가 죽은 후에도 원 저자인 내 이름은 남지 않겠는가.”

-문제는 어떻게 내는가.

“책을 쓸 때는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외국의 참고서를 많이 본다. 개인적으로 러시아와 일본의 수학 문제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응용 수학쪽이어서 순수 수학을 지향하는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 정석에 나오는 문제의 절반 가량은 외국 서적의 문제들을 응용한 것들이고 나머지는 내가 직접 만들었다. 밥 먹거나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첩에 적어두었다가 원고를 쓸 때 참고한다. 정석의 한 페이지는 33행인데 40행짜리 전용 원고지에 사인펜으로 쓴다. 원고를 다 쓰면 대학생들 20여명을 임시 고용해 문제와 답이 맞는지 교정을 보게 한다.”

-정석의 차세대 저자가 될 딸 재현씨는 이사장이 직접 수학을 가르쳤는가.

“재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게 수학 문제를 들고 와 물어본 적이 없다. 동생들이 수학 문제를 풀어달라고 해도 종이와 연필만 내미는 아이다. 외아들은 잠깐 수학 공부를 봐준 적이 있고 딸 넷에게는 정석을 주면서 ‘아빠가 최선을 다해 쓴 책이다. 이 책만 보면 수학은 다 해결된다. 열심히 하라’고 했다. 자식들에게 이 말 떳떳하게 하려고 열심히 썼다.”

-고교 졸업 후 지수 로그나 미분 적분을 못해 당황했던 기억이 없다. 평생 써먹을 일이 없는데도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나.

“수학은 논리적 사고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은 수학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답이 틀렸더라도 과정이 중요하다. 논리적 비약이 있어서도 안되고 군더더기가 들어가도 감점 요인이다. 서울대에서 본고사를 치르던 시절에는 수학시험을 보고 왜 합격했는지 자기도 모르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정답을 썼는데도 과정이 틀려 0점을 맞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답은 틀렸더라도 풀이 과정이 훌륭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 시험을 제대로 보면 굳이 논술시험을 따로 치를 필요가 없다.”

-수학을 잘 하는 비결은….

“수학은 종이와 연필로 풀어야 한다. 또 복습은 하지 않아도 예습을 해야 자기 것이 된다. 무엇보다 자기 힘으로 푸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번에 수능이 어렵다고 해서 문제를 봤더니 별로 어렵지 않더라. 수험생들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풀어본 문제는 쉽게 푼다. 하지만 아무리 쉬워도 새로운 유형이면 쩔쩔맨다. 수학은 생각하고 따지는 학문이다. 빨리 푸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한 문제를 들고 고민고민해가며 스스로 풀어가면 그 과정에서 열 가지 스무 가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왜 수학과에 진학했는가.

“수학이 좋아서다. 미적분에서는 무한히 작아지고 커지는 무한의 세계를 배운다. 집합에서는 AUA〓2A가 아니라 A다. 1+1이 1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수학 문제를 풀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엉덩이를 털고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난다. 2, 3일 고민하던 문제가 풀리면 얼마나 신이 나던지. 나는 지금도 오전 1시, 2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문제를 내고 풀 때가 가장 행복하다.”

전주〓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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