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루사' 한반도 강타]車 10여대 흙속 뒤엉켜 아비규환

  • 입력 2002년 9월 1일 18시 21분


경찰관과 119구조대원들이 흙더미에 묻힌 차량을 끌어내고 있다. - 강릉=안철민기자
경찰관과 119구조대원들이 흙더미에 묻힌 차량을 끌어내고 있다. - 강릉=안철민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9시경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 인한 산사태로 지나가던 차량 10여대가 매몰된 강원 강릉시 왕산면 도마리 오봉댐 인근 35번 국도.

시신으로 발견된 3명을 포함해 1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매몰 현장은 100여m의 사고 구간 도로에 돌덩이와 흙더미, 부서진 차량 조각, 아스팔트 덩어리 등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시신 3구의 신원은 김태완(28·강원 태백시) 김상기(32·강릉농협 왕산지소) 이규동씨(33·강릉농협 왕산지소)로 밝혀졌고 현재 강릉 현대병원에 안치돼 있다.

왕산면 목계리 주민 김교백씨(50)는 “도로에 떨어진 돌무더기 때문에 차량 10여대가 멈춰 서 있었는데 갑자기 도로변 산이 무너지면서 흙더미가 차량을 덮쳤다”고 말했다.

생존자를 찾기 위한 경찰과 119구조대, 인근 군부대의 필사적인 구조작업은 1일에도 계속됐다. 구조대는 31일 시신 1구를 발굴한 데 이어 1일 매몰된 차량 5대를 밖으로 끌어내면서 시신 2구도 추가로 발굴했으나 신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구조대는 굴착기 4대와 덤프트럭 5대 등을 투입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사태가 나면서 도로 아래로 휩쓸려 내려간 차량이 가파른 산기슭에 걸려 있는 데다 차량을 끌어낼 경우 또 다른 산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에는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고 이후 추가 산사태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 구조대는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한 채 현장 주변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또 사고현장으로 통하는 인근 도로가 모두 산사태 등으로 교통이 두절돼 한때 구조대마저 고립됐다. 현장은 1일 오후 3시반경 도로 일부가 임시 복구돼 일방통행이 가능하게 됐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구조작업이 예상외로 길어지자 안타까움과 초조함을 나타냈다. 또 관할 경찰서 등에는 매몰 현장에서 발굴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전화가 잇따라 걸려오기도 했다.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강릉경찰서 관계자는 “지금까지 찾은 시신 3구 외에도 시신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발굴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추가 산사태가 우려돼 작업이 더디지만 구조와 복구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릉〓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김천 아수라장' 도시전체 침수 21명 사망-실종▼

태풍 루사가 몰고 온 폭우로 지난달 31일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던 경북 김천시내는 1일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온통 진흙을 뒤집어쓴 폐허의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과 상인들은 가재도구와 가게 물건을 씻어내느라 분주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막막해했다.

감천변의 황금동시장 등 김천시내 곳곳에는 이날 밤에도 전기가 끊기고 물이 공급되지 않아 많은 시민이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신연옥씨는 “이런 물난리가 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수라장 같은 가게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했다.

이번 태풍으로 김천시에서는 13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경북 전체의 사망 실종자 29명 중 대부분이 김천시에서 발생했다.

산사태로 노부부 2쌍과 부자 등 이웃 6명을 한꺼번에 잃은 황금동 주민들은 이날 슬픔 속에 하루를 보냈다. 구조작업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지만 모두 숨진 채 발견되자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박동윤씨는 “이번처럼 무섭게 쏟아지는 비는 70평생 처음”이라며 “착하게 살던 이웃들이 순식간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울먹였다.

주민들은 “산자락의 경사가 급해 비가 쏟아지면 위험한 곳인데 미리 대피하지 않아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고 입을 모았다.

경부선 철도 하행선 교각 2개가 붕괴되면서 철로 30여m가 무너져 물에 잠긴 감천철교는 물살이 거세 완전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수해현장을 뛰어다니던 박팔용(朴八用) 김천시장은 “김천시가 순식간에 폐허가 됐지만 시민과 힘을 합쳐 수마의 흔적을 하루빨리 지우겠다”고 말했다.

김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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