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장선거 이상과열-혼탁

  • 입력 2002년 3월 29일 18시 27분


서울대 A교수는 지난달 “총장선거에 나갈 계획이니 잘 부탁한다”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식사 대접을 세 번이나 받았다. A교수는 “친한 교수가 밥을 함께 먹자고 해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는데 총장선거 출마에 대한 자문과 도움을 부탁해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대학사회에 총장선거와 관련해 정치판 같은 과열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출마를 결심한 교수들이 동료 교수들에게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접대골프까지 제공해 비판을 받고 있다.

▽실태〓11월 총장선거를 실시하는 서울대는 벌써부터 단과대별로 1, 2명의 교수가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B교수는 “출마를 결심한 일부 교수들이 참모급 교수 10여명을 모아 선거운동에 들어가 몰려다니거나 함께 골프를 하기도 한다”며 “총장후보선정위원회가 8월 이후에나 구성되는데도 벌써부터 선거운동이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C교수는 “출마 의사를 밝힌 교수가 술을 사주며 ‘대학 내 오피니언 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수들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출마하려는 교수들이 참모 교수들과 함께 전체 교수들을 출신학교와 지역별로 분류해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9일 교수협의회 총장후보선거를 치른 고려대 D교수는 “지난해 5월부터 선거운동을 시작했는데도 200여명의 교수밖에 못 만났다”며 “교수들과 만나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비용은 사재로 충당했으며 20여명의 친한 교수들이 도와 줬다”고 말했다.

일부 후보는 ‘국내 최고의 교수 급여 보장’ ‘수천억원대의 프로젝트 유치’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고려대는 총장추대위원회가 교수협의회 선출 후보 2명과 외부에서 선정된 후보 등을 포함한 3∼5명의 후보를 뽑으며 이 중에서 법인 이사회가 4∼5월경 총장을 선임한다.

▽문제점과 대안〓교육인적자원부는 91년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해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총장을 선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다수의 대학이 직선제 또는 직간선제 방식을 실시하고 있으나 이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학은 전체의 26.6%인 50개대(국공립 37개, 사립 13개), 간선제 30개대, 임명제 98개 등이며 직선제의 폐해가 심각하게 나타나자 다시 간선제로 전환한 대학도 있다.

박홍(朴弘) 서강대 전 총장은 “90년대 초반에 대학 총장 160여명이 모여 논의한 결과 85% 이상이 ‘직선제의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장에 따르면 선거가 끝난 뒤 총장 선출을 도와준 교수들이 보직을 요구하거나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던 교수들끼리 앙숙이 되는 등 줄서기와 파벌양상이 뚜렷해진다는 것.

그는 외국의 대학들이 학부모와 동창회, 학생대표 등을 총장선거에 참여시키는 방법도 국내 대학들이 참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정의교육시민연합 최현섭(崔鉉燮·강원대 교수) 위원장은 “대학총장선거는 ‘패거리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인간관계와 학문의 발전을 해치고 있다”며 “총장후보의 개인적인 교수 접촉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김유성(金裕盛) 교수는 “직선제는 폐해가 있지만 다수의 교수가 참여해 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라며 “교수들 스스로가 이해관계를 떠나 유능하고 대학에 봉사하는 총장을 뽑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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