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화엄세상 승주 선암사

  • 입력 2002년 3월 27일 13시 43분


전남 승주 선암사 경내의 매화 터널
전남 승주 선암사 경내의 매화 터널

황사. 그 누런 모래바람에 세상은 제 모습과 빛깔을 잃었다. 산도 바다도 언덕위에 피어오르던 아지랑이까지도…. 보이지 않으니 느낌도 없다. 그저 덤덤할 뿐. 감동이란 있을 수 없다. 덕분에 사는 재미도 없고.

황사에 갇힌 희뿌연 세상. 그래도 여기에는 희망이 있다. 바람 잠들면 제모습 되돌아 올테니. 그러나 어쩐다. 마음의 눈을 가린 내 안의 모래바람은 있는 지 조차 느끼질 못하니. 모처럼 마음의 창을 열고 모래먼지를 털어낸다. 못된 모래바람도 이쯤되면 쓸모가 있구나.

답답함 짜증 안타까움. 모래바람은 기어이 남도의 해안을 주유하던 내 발을 붙잡았다. 어디로 가나. 마음속 먼지를 툴툴 털어낼 좋은 곳…. 그렇지 선암사. 몇해전 겹벚꽃 활짝 핀 나무 아래서 하얀 꽃비 맞으며 활짝 웃던 둘째아이 모습이 생각났다. 참 좋은 때였지.

고흥반도를 등지고 차를 달려 승주읍, 호반도로(상사호)를 차례로 지나 조계산(군립공원)에 들어섰다. 황사의 만행은 극에 달했지만 선암사 숲은 그 바람에도 온전한 듯 보였다. 간밤의 비 덕분일까. 계곡 진달래 진분홍 꽃잎은 색깔이 더더욱 도도했고 봄가뭄에 말랐던 측백나무 수피 역시 습기 머금어 촉촉했다. 개울낀 숲길로 천천히 오르기를 20분. 부도탑 목장승 지나니 무지개 형상의 돌다리 승선교(昇仙橋)가 보였다.

절집의 다리. 세상풍진에 더럽혀진 속세로부터 불국정토 이룬 법계로 이어주는, 괴로움의 이 언덕(피안)에서 열반의 저 언덕(차안) 너머 도솔천으로 이어주는 깨닳음의 그 다리 아닌가. 산너머 송광사에서는 능허교를, 여기 선암사에서는 승선교를 건너야 부처님을 뵈올 수 있다. 눈밝은 사람은 다리위에서 흐르는 물을 보고도 깨닳음을 얻는다 했다. “고정된 것은 없다” 는 부처님 말씀을.

선암사로 가자면 승선교를 건너야 했다. 그러나 차량 통행로가 생긴뒤에는 건널 필요가 없어져 관상용이 됐다. 그 옛길로 건너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렵다. 붕괴위험으로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돌아치와 그 밑으로 자리잡는 강선루의 어울림(계곡 물가에서 볼 수 있다)은 선암사를 대표하는 걸작급 풍경인데 그마저 볼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 키낮은 차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팔백성상 이 자리를 지키며 깨닳음을 향해 수행정진하던 선승 학승의 벗되준 녹차잎 그 나무들. 차밭 지나니 하늘 가린 삼나무의 숲이다. 도선국사가 직접 만들었다(862년)는 작은 연못 ‘삼인당’ 이 그 숲가에 있었고 찻집 ‘선각당’ 은 연못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주문을 통해 들어선 경내. 고색창연한 당우가 일렬(계단식)로 배치된 범종각 대웅전 팔상전 양편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채 처마를 맞대고 모여 앉은 형국이다. 그 당우 사이사이로 심궈진 매화고목 수피에 올라앉은 푸른 이끼를 통해 천년고찰의 풍모가 느껴졌다.

지금 경내는 꽃대궐이다. 막 봉오리 터뜨린 노란 산수유꽃과 하얀 목련꽃, 수백년생 동백나무 아래는 떨기채 후두둑 떨어진 빨간 동백꽃이 지천이다. 대웅전 뒷편 무우전(無憂殿)앞 담장가의 늙은 매화나무 가지에서는 청매화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었다. 뒷산쪽 담장가에서는 아예 꽃터널이 생겼다. 4월말 겹벚꽃까지 쉼없이 피고지는 꽃들로 뒤덮이는 산사. 선암사의 봄은 이렇듯 화려하다.

●여행정보

▽찾아가기 △손수운전=호남고속도로/승주IC∼22번국도(구례방면)∼857번 지방도(순천방향)∼죽학삼거리/832번 지방도∼괴목(사하촌)∼주차장 △대중교통=서울(동서울터미널)↔순천(5시간반 소요). 순천역, 버스터미널↔선암사(시내버스 운행중) 순천교통 061-744-3703 ▽선암사↔송광사(두루찾기) △조국순례 자연도보(6.8㎞)=선암사∼굴목재∼야영지∼굴목재∼송광사. 3시간 △등산로=①선암사∼장군봉(조계산 정상·해발 884m·거리 3㎞) 2시간 ②장군봉∼송광사(8.4㎞) 5시간 ③연산봉∼송광사(5.9㎞) 3시간 ▽숙박 △괴목마을=사하촌. 기와지붕의 전통가옥 민박집 등 다양. △아젤리아호텔(www.azalea.co.kr)=상사호 호반의 산중턱에 위치, 전객실(60개)이 레이크 뷰. 온돌 침대 스위트 가족침대방 등 다양. 3만∼7만원.

●함께 떠나요

△남도 맛기행(2박3일)=남원 새집(추어탕), 율포 소바우집(회정식), 여수 한일관(해물탕정식) 승주 진일식당(김치찌개정식)과 선암식당(산채정식), 순창 새집(한정식)에서 식도락 즐기기. 광한루(남원)∼쌍계사 벚꽃∼여수비치호텔∼향일암 해맞이∼오동도 동백꽃∼보성 녹차밭∼낙안읍성 민속마을∼상사호∼호텔아잘리아∼선암사∼순창 고추장마을∼강천사. 4월 9, 16, 23일 출발, 32만5000원. △남도 꽃여행(무박2일)=보성 녹차밭∼율포해변(해수녹차탕)∼선암사∼산수유 꽃마을. 30일 출발. 5만8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순천=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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