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 정치’ 판친다…여야공방 툭하면 검찰-법원으로

  • 입력 2001년 10월 24일 18시 21분


각종 비리의혹 사건이 잇따르면서 여야가 사활을 걸고 벌이는 정치공방전이 상대방에 대한 고소 고발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정치권 고소 고발 사태의 특징은 이전과는 달리 주로 여당이 주도하고 있고 검찰 수사도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고소 고발이 ‘법적 심판’을 구하는 의미를 넘어 정치 전략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소 고발 사태〓민주당은 24일 경찰 정보보고서 유출 사건과 관련해 제주경찰서 임건돈(任建敦) 경사와 한나라당 제주도지부 김견택(金見澤) 조직부장을 허위공문서 작성과 행사 등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발생지와 관련자들이 모두 지방에 있는 사건을 대검에 고발한 것은 이례적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안경률(安炅律) 유성근(兪成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이용호 게이트’에 여권 실세가 연루돼 있다며 이들의 이름을 거론한 것과 관련해 안 의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22일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또 민주당 김명섭(金明燮) 사무총장은 22일 밤 서울 구로구에서 벌어진 여야 선거운동원간의 충돌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 부정선거 단속반원들을 집단폭행 혐의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고소했다.

이와는 별도로 대검 일부 검사들도 최근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가 “이용호씨의 뇌물 비망록이 있다”고 발언,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 총무를 상대로 6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냈다.

▽주로 여당과 정부 기관에 의해 주도되는 고소 고발〓최근 고소 고발 사태의 특징은 대부분의 고소 고발이 집권당인 민주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

과거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 민감한 정치 사안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고소 고발 사태가 빚어진 적은 있지만 당시에는 여당과 야당이 맞고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고소 고발 이후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양당 총무 등이 만나 고소 고발을 함께 취하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의 고소 고발은 주로 여당이 제기하는 데다 여당의 입장이 강경해 ‘갈 데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 법조인들은 “여당이 고소 고발을 ‘정치 전략’으로 삼아 정치권의 추가 폭로와 언론의 후속 보도를 억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도 “언론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분별한 폭로를 대서특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위권은 사법부에 호소하는 길밖에 없다”며 “고소만이 살 길”이라고 말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청와대나 여권 핵심부도 정부의 정책이나 여당 활동과 관련한 야당이나 언론의 잘못된 폭로나 보도에 대해서는 즉시 반론권을 행사하고, 정정보도를 청구하도록 지침을 내린 바 있다.

▽검찰 수사〓검찰은 민주당 김홍일(金弘一) 의원 등의 명예훼손 고발사건을 고발 직후 서울지검 형사10부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에 앞서 99년 10월의 ‘언론대책 문건사건’과 관련해 이강래(李康來)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문건 작성자로 지목한 혐의(명예훼손)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을 1월 말 기소했다. 또 전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李馨子)씨가 남편 구속을 막기 위해 정권 실세들의 부인들에게 로비를 했다고 주장한 이신범(李信範) 전 한나라당 의원을 5월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97년 11월 국회예결위 질의에 앞서 “부산 건설업체의 자금 수백억원 중 일부가 대선후보의 경선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고 발언한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의원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을 인정해 불기소처분했었다.

<이수형·윤영찬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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