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앉던 백령도 사곶해변 차무게도 못견뎌

  • 입력 2001년 4월 30일 19시 44분


서해 최북단 백령도. 백령도는 지리적 조건과 안보상의 이유로 태초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해왔던 천혜의 섬이었다. 그러나 백령도는 요즘 각종 개발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31일 오전 11시50분. 쾌속선을 타고 가다 섬이 가까워지자 백령도 용기포항 왼쪽으로 2.3㎞나 길게 뻗어 있는 사곶해변이 눈에 띈다.

잘게 부서진 조개껍데기와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사곶해변은 천연의 비행활주로와 천혜의 해수욕장을 이룬다. 이곳은 97년 12월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됐다.

이곳은 물이 빠진 뒤에는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달려도 바퀴자국이 생기지 않을 만큼 지반이 단단해 중형 화물기의 이착륙이 가능했다. 이탈리아 나폴리 해변과 더불어 세계에서 단 2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실제로 이곳은 6·25전쟁 때 미군이 전투기비행장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70년대 중반까지 군용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

백령도 사곶해변의 지반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승용차를 몰고 달렸다. 2분쯤 달려보니 승용차 앞바퀴가 모래 속에 깊게 파묻혀 버리면서 헛바퀴가 돌았다.

비행기 동체를 거뜬히 견뎌낼만큼 단단했던 해변이 차량 한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옹진군 관계자는 “이제는 천연 비행장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곶해변의 지반이 크게 약화된 이유는 남쪽 코밑인 진촌리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간척사업 때문. 옹진군은 담수호 확보와 농경지 확장을 명분으로 91년 6월부터 간척사업(총면적 667㏊)에 착수, 4년간 820m의 제방을 쌓아올렸다. 이 때문에 바다쪽에서 섬쪽 포구로 조류를 따라 왕래하던 개흙이 바다를 메우기 위해 만든 방조제에 막혀 해변으로 밀려드는 바람에 백사장 지반이 물러졌다.

주민 홍복남씨(72)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자연유산이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져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기념물과 김용희씨(41)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이전에 간척사업이 벌어져 사곶해변의 보존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조만간 문화재위원과 현지조사를 실시해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지하는 절차를 밟든지, 보존대책을 세워보든지 하겠다”고말했다.

<백령도〓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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