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중 파출소장이 성추행" 경찰대 졸업생 진정서 파문

  • 입력 2001년 4월 26일 18시 38분


경찰대 여학생이 현직 경찰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했으나 경찰대가 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졸업한 뒤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26일 밝혀졌다.

A씨(22·여·S대 대학원 재학)는 경찰대 졸업 직후인 지난달 27일 서울 B경찰서 C파출소 D소장(53·현재 서울 E경찰서 근무)으로부터 현장실습 교육을 받다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청 감사관실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건 내용〓이 진정서에 따르면 A씨는 경찰대 3학년 재학 중이던 지난해 2월초 서울 C파출소에서 2주 동안 ‘파출소 소장 실습’ 교육을 받던 중 D소장으로부터 “근무 후 드라이브를 가자”는 전화를 받았다.

선배 경찰관인 D소장의 제의를 거절하지 못한 A씨는 자정 무렵까지 함께 술을 마셨다. D소장은 귀가길에 “바람이나 쐬고 가자”며 한강 둔치에 차를 세운 뒤 강제로 입을 맞추고 손을 옷 속으로 집어넣는 등 성추행을 했다. A씨가 울면서 항의하자 D소장은 “집에 데려다 주겠다”면서 차를 몰고가다 A씨의 손을 자신의 바지 속에 집어넣기도 했다.

A씨는 “지금 숙소에 가면 꾸중을 들을 테니 호텔에서 자고 가라”는 D소장의 권유를 뿌리치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경찰대의 사건 무마〓A씨는 경찰대 지도관과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고소의사를 밝혔다. 대다수가 만류해 고민하던 A씨가 고소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이미 친고죄의 시효 6개월이 지나 버렸다. A씨는 지난해 11월 경찰대 담당 지도관에게 이 사건을 상부에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

A씨는 “‘근무시간이 끝났는데도 파출소장과 술을 마셨기 때문에 정학이나 퇴학을 당할 수 있다’ ‘앞으로 경찰관으로 복무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등의 답변만 들었다”면서 “오히려 내가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경찰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경찰청 감사관실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달 9일과 23일 D씨가 성추행을 시인한 전화 통화 녹음 테이프와 녹취록을 경찰청에 추가로 제출했다.

▽관련자 반응〓D소장은 “성추행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 D소장은 25일 S대 대학원의 조교실을 찾아가 신분증을 제시하며 A씨 연락처를 알려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D소장은 “원고를 써달라고 부탁하려고 연락처를 물었다”고 말했다. 경찰청 감사관실측은 “현재 2차 조사를 하면서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폭력 대응 사각지대〓경찰대와 육해공사 등에서 앞다퉈 여학생을 뽑고 있지만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전문상담기관은 없다. A씨는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학생들이 몇 명 있었지만 제대로 상담받지 못해 고민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서울대 성희롱성폭력방지센터 소장 김계현(金桂玄·교육학) 교수는 “남성의 공간으로 인식돼 온 경찰대와 사관학교 등지에 여학생을 위한 성폭력 예방 및 전문상담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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