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추적 관련법규 느슨…사생활침해 논란

  • 입력 2001년 4월 20일 18시 47분


본인의 동의나 법원의 영장에 의하지 않고 개인의 예금계좌를 추적할 수 있는 근거가 관계 법률에 의해 너무 폭넓게 인정되고 있어 헌법상 보장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관련기사▼
- 제한-예외단서 많아 남용우려 높아

▽법적 근거〓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은 제4조 1항에서 원칙적으로 예금자 본인(명의인)의 동의 없이는 계좌추적(금융정보 제공 요구)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4조 1항 단서조항으로 본인의 동의 없이 계좌추적을 할 수 있는 근거로 △검찰 등 수사기관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 받은 경우와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의 감사와 검사 등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등 6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또 ‘상속세 및 증여세법’도 국세청이 세액 결정 등을 위해 본인의 동의나 법원의 영장 없이 계좌추적을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 ‘공직자윤리법’ 제8조 5항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134조에 따라 공직자윤리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도 각각 공직자 재산등록사항 심사와 선거비용 실사를 위해 계좌추적을 할 수 있다.

본인의 동의나 법원의 영장 없이 비밀리에 계좌추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4개 법률에 규정돼 있는 것이다.

▽영장 없는 계좌추적 실태〓지난해 상반기에만 10만4000여건의 계좌추적이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이들 근거법률에 따라 본인의 동의나 법원의 영장 없이 이뤄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10만4000여건 가운데 본인의 동의를 얻고 계좌추적을 한 경우는 2만여건에 불과하며 국세청과 공직자윤리위, 선관위 등에 의해 각각 3만4000여건과 9000여건, 500여건의 계좌추적이 이뤄졌다.

▽전문가 의견〓김종훈(金宗勳) 변호사는 “예금계좌 추적은 헌법상 보장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예외이고 이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만큼 법원의 영장 등 엄격한 견제와 심사에 의해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 같은 견제 없이 계좌추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폭넓게 규정돼 있다는 것은 문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김대평 검사총괄실 팀장은 “현행법상 금감원이 계좌추적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상당히 제약돼 있다”며 “검찰처럼 계좌추적을 위해 제3의 기관의 심사를 받는다면 조사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떨어져 조사 자체를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또 “지난해 상반기에도 총 10만4000여건의 계좌추적 가운데 금감원이 한 것은 3000건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무부 해명〓법무부는 20일 금융감독원 직원의 검찰 파견과 관련해 “일시적인 업무지원을 받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공무원임용령상의 파견 요청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설명자료를 통해“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금융관련 사항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 최소한의 범위에서 금감원으로부터 소수의 인력을 지원 받고 있다”며 “이들로부터 수사에 필요한 조언 등을 받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또 “검찰에서 금융계좌 추적을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법원의 영장에 의해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시하고 있다”며 “검찰 외에 금감원 등 일부 기관은 법원의 영장을 요하지 않는다고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계좌추적을 실시하고 있으므로 실시 건수가 많더라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