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은 농성진압 현장]경찰·노조 폭력 자제

  • 입력 2000년 12월 27일 18시 55분


농성해산 '바람작전'
농성해산 '바람작전'
‘평화적인(?) 강제진압.’

27일 오전 70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해 벌인 국민 주택은행 농성 노조원 해산작전은 당초 우려와는 달리 평화적으로 마무리돼 대규모 시위진압의 한 선례가 될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조원들의 별다른 저항이 없었던 것도 큰 원인이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물리적 충돌을 최대한 피하려 한 경찰의 자세도 큰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시간대별 해산 상황〓해산작전 하루 전인 26일 경찰 내부에서는 “사무직 노조 같은 ‘오합지졸’들을 해산시키는 데는 30분도 안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물대포를 쏘고 진압봉으로 농성자들을 ‘때려서’ 연행하는 과거의 진압방법을 기준으로 한 것.

그러나 한편에선 밤 시간을 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과거처럼 살벌한 모습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27일 오전 8시10분경. 한진희 일산경찰서장이 농성현장인 국민은행 일산연수원 정문에 나타났다. 그는 이례적으로 배장환(裵章煥)연수원장에게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며 “곧 경찰이 진입해 농성자들의 해산을 유도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관례화된 ‘기습 진입’ 대신 법적 절차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 것.

▼관련기사▼
국민·주택은 노조 "전산직원 600명 여주노총연수원서 농성"

10분쯤 뒤 7000여명의 경찰이 일제히 연수원의 정문과 담을 넘었다. 그 과정에서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사수대’ 400여명과 경찰 사이에 가벼운 충돌이 있었으나 양쪽 모두 진압봉과 쇠파이프 등 ‘무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몸싸움은 불과 2, 3분 만에 끝났다.

경찰은 진입 10분만에 노조원 7500여명이 모인 대운동장을 완전히 포위했다. 시위 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살수차(물대포) 2대는 연수원 밖에서 대기하며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헬기 2대가 20여분간 4, 5차례 지상 20여m까지 하강하며 ‘바람’을 일으키는 새로운 방식으로 농성자들의 해산을 유도했다.

8시45분경 노조 대표가 경찰측에 “조합원 의사를 물은 뒤 자진해산 여부를 결정하겠다. 1시간 정도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1시간이면 너무 길다. 빨리 나가 달라”고 난색을 표했지만 역시 강제 해산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이때부터 대치가 시작됐다. 노조원 일부가 자진해서 연수원을 빠져나갔고 45분 가량을 기다린 경찰은 9시반경 드디어 ‘밀어내기’를 시작했다. 전경들은 방패로 몸을 가린 뒤 천천히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노조원들을 밀었다. 경찰 지도부는 “여자들은 건드리지 마” “사람들 안 다치게 해”라고 지시하는 등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경찰 진입 2시간 만인 오전 10시10분경 노조원들은 모두 연수원을 빠져나갔다.

▽경찰과 노조측 반응〓 현장에 투입된 경찰관들은 “과거에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게 주목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지휘부가 시위대의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노조측도 부상자가 나오지 않은 탓인지 경찰의 진압방식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조합원은 “방패와 진압봉으로 무장한 경찰이 들이닥쳐 상당히 긴장됐는데 생각보다 부드럽게 나와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경찰청 허준영(許准榮)경비교통심의관은 이날 해산작전이 끝난 뒤 “앞으로도 진압에 걸리는 시간보다는 시위대의 안전을 더 중요시하는 작전을 계속 사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양〓이완배·이동영·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