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돈줄이 막혔다]은행, 돈 왜 안풀까?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45분


“11월 이후 삼성전자의 회사채도 매입을 꺼린다.”(K은행 채권딜러)

“이번 명예퇴직 때 대출 담당자가 많이 다쳐 크게 위축됐다.”(Y은행 자금부장)

요즘 은행원들의 고민은 ‘돈은 넘치는 데 투자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예금규모를 키우려는 외형경쟁은 그만둔 지 오래다.

시중자금은 안전한 은행으로 몰리지만 은행 역시 안전한 투자처만 찾고 있다.

은행 채권딜러들은 “‘11·3 퇴출’ 이후 국채와 공사채만 겨우 거래된다”며 “4대 대기업의 회사채 거래도 거의 끊겼다”고 전했다.

외환은행 이동현 채권딜러는 “부도가 두려운 게 아니다. 신용등급 하락으로 채권값이 떨어지면 손실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딜러는 “시장이 불안한 상태에서 회사채에 투자하는 것은 투기”라고 말했다. ‘동아건설퇴출’ 등 대마불사의 신화가 사라진데다 일부 대기업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돌면서 대기업도 안전한 투자처가 못되고 있는 것.

갈 곳 없는 은행돈은 국채로 몰려든다.

외환은행 자금부 이상면부장은 “국채 금리가 예금이자보다 낮다”며 “역마진을 감수하는 은행도 요즘 힘들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믿고 빌려줄 만한 기업을 찾아내기는 하늘의 별따기인 데다 한번 기업대출을 잘못하면 평생 ‘꼬리표’가 붙는다”며 “차라리 역마진을 감수하는 것이 낫다”고 털어놨다. 실제 이번 구조조정에서 대출 심사역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

H은행의 관계자도 “11·3퇴출 이후 여신 정책이 더 까다로워졌다”며 “루머가 도는 기업에 대해서는 자금을 회수하고 담보에 따른 대출 비율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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