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카지노 개장]"폐광경제 살린다면 …"

  • 입력 2000년 10월 8일 23시 23분


8일 강원 정선군 고한읍 ‘스몰카지노’. 주변에 ‘영동택시’에서 ‘카지노택시’로 이름을 바꾼 택시회사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카지노 PC방’ ‘카지노 다방’ 등 카지노란 이름을 단 업소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28일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이 카지노의 개장을 앞두고 주민들은 지금 커다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95년 ‘핵폐기물 처리장이라도 유치해 달라’고 시위를 벌일 만큼 절박했던 폐광 주민들은 이 카지노의 개장이 마을에 부(富)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있다.

탄광 막장에서 25년 동안 생활해온 광원 천봉룡(千奉龍·54)씨의 딸인 초보 딜러 천현희(千賢姬·21)씨. 그는 “입사가 확정됐을 때 아버지가 가장 기뻐했다”면서 “부모님께 집을 한 채 사드리고 결혼할 생각”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종합 관광지로서의 여건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하게 카지노장이 개장되면서 주민들은 걱정이 앞선다.

벌써부터 유흥업소가 늘고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정작 필요한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은 절대 부족해 ‘도박장만 있고 관광지는 없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95년 서울로 떠났다가 올 봄 고향인 고한으로 돌아와 일식집을 차린 남진만씨(44)는 “부유층이 올만한 음식점은 거의 없고 숙박시설도 여인숙 수준을 넘는 곳이 드물다”고 말했다.

9월 인구 2만명 남짓의 고한읍내에 M룸살롱이 문을 열었다. 주민들이 몰려가 시위를 벌였지만 개점을 막지는 못했다. 인근 음식점 주인은 “서울에서 접대부 10여명이 이 술집으로 왔다”고 말했다. 룸살롱 외에도 올들어 다방과 술집이 줄잡아 20곳 이상 늘었다.

고한여자종합고 2학년 유미영양(17)은 “요즘 밤이 되면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들이 술집 주변을 서성거려 무섭고 싫다”고 말했다.

폐광 경제를 살리기 위해 카지노가 생겼지만 정작 주민들의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원랜드는 이 지역 출신을 우선 고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직원 중 폐광지 출신은 25% 남짓. 동국대 관광경영학과 이충기교수는 “지역 자본이 부족한 탓에 카지노로 돈을 버는 사람은 외지인일 것”이라면서 “이는 카지노 설립 취지와 달라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주택난도 심각하다. 주변 개발로 유입인구가 늘어났지만 주택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하다.사북읍 도사곡 주공아파트 13평형은 올해 초 1500만원선이었으나 현재 2600만원을 호가한다. 정선군이 내년초 도시계획을 확정하면 부동산 투기 바람도 거세질 전망이다.

<정선〓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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